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녹야원에서 진리를 설하시다
부처님의 깨달음
초전법륜(初轉法輪)란 것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처음으로 법의
수레바퀴를 굴렸다는 것으로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신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깨달고 난 후 한동안 보리수
나무 아래 머물며 삼매에 들어 있었습니다.
삼매에 든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은 내용이
매우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며
설하기를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최고의 신인 범천이 하늘에서 내려와
부처님께 귀의하고 중생을 위해 설하여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그 당시 부처님의 심정을 전하는
≪상응부경전≫에는
"고생 끝에 겨우 얻은 이것을
또 남들에게 어떻게 설해야 하는가?
오! 탐욕과 노여움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이 법을 알리기란 쉽지 않아라"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지혜의 길로
이끌기 위해 부처님은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기로 결정하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려라"
이렇게 결심한 부처님은 자신의 깨달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다를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들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알고,
전에 설산에서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를 찾아 녹야원으로 갔습니다.
다섯 수행자는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하자
타락한 사문이라 비난한 이들이지만, 부처님은
그들을 향해 당신의 깨달음을 전하였습니다.
최초로 설한 것은 중도, 사성제, 팔정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설법과 대화, 토론을 통해
맨 처음으로 교진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나머지 수행자도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이 제자들이
최초의 비구인 것입니다.초전법륜이 있은 후
부처님께서는 야사를 비롯한 60명의 젊은이들에게
법을 설하여 그들의 제자로 삼았습니다.
이런 사건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부처님과 다섯 비구를 아라한(阿羅漢,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들은 함께 다니면서 많은 출가 수행자들과
재가신도들을 받아 들이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이들에게 각 지방으로 가서 진리의
가르침을 전할 것을 권유하면서 "비구들이여,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 하늘과 땅 모든 것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를 설하라.
사람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하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가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전도 선언 입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에 이타(利他,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의 대승불교가 일어나게 된
근본취지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도 선언은 불교의 참뜻이 스스로의
해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이익과 행복에 있음을 알리고 있으며,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불교가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인도에는 많은 사상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그들의 사상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가르침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그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깨달음으로 타인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전도 선언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들을 떠나 보내기 전에 하신
다음과 같은 당부는 깨달음의
실천적인 자세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출가한 사람으로서 법을 펼 때,
남의 존경을 받겠다는 생각을 내서는 안된다.
남을 도울 줄 모르고 법에 의하여 먹고
살려고 하는 자는 '법을 먹는 아귀'와 같은 자다.
또 너희가 전하는 법을 듣고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럴 때 너희들은 교만해지기 쉽다.
사람들이 법을 듣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공덕처럼 생각하면 그는 벌써
법을 먹고 사는 아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갉아 먹고 사는
아귀가 되지 않도록 항상 겸손해야 한다."
부처님이 최초의 설법을 하시고 승단이
만들어졌던 당시에 부처님과 제자들은
아무 곳이나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면
나무 밑이나 동굴, 계곡 등 바깥에서
기거하였습니다. 안주할 수 있는 집을 갖지
않는 것이 출가 수행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부처님의
교단에 공원 등의 토지와 비와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집 등을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우르벨라로 가서 당시 가장
이름 있는 종교가였던 가섭 삼형제를
교화하여 가섭 삼형제와 그들의
제자 1,000명을 부처님의 제자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왕사성의 종교가를 모두 교화한 이 사건은
국왕과 백성을 모두 놀라게 하였고,
국왕인 빔비사라 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이 우기(雨期)
동안 머무르시며 가르침을 펴실 수 있는
사원을 기증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입니다.
최초의 우기를 베나레스에서 지낸 후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죽림정사에서
우기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라자가하의 유복한 상인이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이 기거할 수 있는 승원을
기증하겠다고 부처님의 동의를 구하였습니다.
상인은 단 하루 동안 ?죽림공원?에
집을 지었고 그 다음날 부처님과 제자들을
공양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정식으로 집을 승단에 기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 상인의 누이 동생의 남편인
수닷타가 일 때문에 라자가하에 왔다가
상인의 집에 들렀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을
모실 준비로 매우 분주한 상인의 집에서는
아무도 수닷타를 맞이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수닷타가 이에 불만을 품고 있을 때 상인이
부처님과 제자들을 모실 준비의 지시를 끝내고
수닷타에게 다가와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수닷타는 호기심이 생겨 그 다음날 아침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죽림정사를 찾아 갔습니다.
부처님은 밖에서 산책 중이셨는데
수닷타를 보신 부처님은 수닷타의 이름을
친히 부르셨습니다. 이에 감격한 수닷타는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 발 밑에 엎드려
가르침을 받고 재가신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닷타는 자신의 마을에서
다음 우기를 보내시라고 청하였습니다.
수닷타는 자신의 마을인 사밧데이로
돌아와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무실 수 있는 장소를 찾았습니다.
그 이상적인 장소를 찾았으나 그 장소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제다왕자였습니다.
제다 왕자는 자신의 공원에 금화로 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해 놓으면 공원을
수닷타에게 팔겠다고 하였습니다.
수닷타는 자신의 하인들을 시켜 공원을
금화로 깔았으나 문 가까이에
조그만 공간이 남았습니다.
이에 수닷타는 다시 하인을 시켜 작은
공간에 깔 수 있는 금화를 가져 오게 하였고,
제다 왕자는 자신의 계약 조건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고 나머지 토지를 기증하였습니다.
그 후 왕자는 그 곳에 벗꽃 문을 만들게 하였고
수닷타는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물 수 있도록
건물과 그 이외의 시설물들을 세웠습니다.
이곳을 젯다바나 승원, 즉 기원정사라고
하였고 그 후에 이곳이 부처님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0대 제자의 한 분인 사리불과 목련건이
제자 250인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과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왕사성의
죽림정사는 사위성의 기원정사와 함께
전도의 양대 거점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성도하신지 몇 년 후에 고향인
카필라국에 가서 부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고 역시
10대 제자의 하나인 아난과 라훌라,
아니룻다, 우바리 등의
제자를 출가시켰습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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