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大乘佛敎)
불교의 역사
근본 교리라고 하는 것은
원시불교의 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원시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부터 불교가
20부파로 분열하기 시작할 때까지의 불교를 말합니다.
불교의 초기에 교리가 아직 다양하게 전개,
정리되지 않았던 때의 불교를 말하는 것으로
아쇼카왕 시대까지의 불교를 말하며,
초기불교라고도 합니다.
불교는 근본불교시대를 지나 소승, 대승으로
나뉘어지고 이것이 중국으로 전해졌으며
우리 나라에도 고구려 소수림왕 때
공식적으로 불교가 들어와 우리 민족만의
불교역사를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
대승불교(大乘佛敎)
대승/대승불교의 성립/대승불교의 특징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을 담은 것이 근본교설 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부처님의 말씀을 풀이 하는데 있어서
다른 의견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으며,
결집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결집에서는 경과 율이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이 결집에서 중요한 것은 아직 부처님의
교설이 문자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함(阿含)의 교설이라고 합니다.
불교교단은 부처님의 열반에 드신 후 100년간은
다 함께 화합하여 아무런 동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00년쯤(B.C 4세기) 되어서는
계율과 교리에 대하여 다른 견해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발생한 것이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로의 분열입니다.
이것을 근본 이부(根本二部)의 분열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분열이 일어나자 다시 새로운 분열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B.C 1세기 경에는
총 20부파가 형성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부파불교의 시대라고 부르고,
그 이전의 시대를 원시불교 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부파불교 시대의 각 부파는 아함(부처님의 근본 교설)
의 교법에 대하여 전문적인 연구를 행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의 근기(根器: 사람들 각자가
가진 성품에 따라 법을 받아 들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것을
이해할 때도 개인에 따라 그 차이가
나타남을 말하는 것입니다.)를 살펴 보아
그에게 알맞은 설법을 하였기 때문에 그 근기가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많은 단편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처님의 법을 체계화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생각을
말해 주는 것이 아비달마 교학이었습니다.
부파불교의 이러한 아비달마 교학은 부처님의
근본 교설(아함)을 체계화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처님의 교설을 아함에 한정시키고
어려운 해석으로 부처님이 설하신 법을 더욱
이해하기 어렵고 무의미한 불교로 만들어 갔습니다.
부파불교에서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무위열반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고,
이상적인 인간상은 그러한 열반을 얻는
아라한(阿羅漢)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이러한 부파불교의 인간상과 수행상은 전문적으로
수행을 하는 출가한 승려들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출가한
승려들로부터의 구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재가 신도들은 부처님의 유골을 모신
불탑(佛塔)을 중심으로 모여 부처님에
대한 동경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출가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여
교단을 지켜 온 것과는 반대로, 불탑을 지켜온
재가 신도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내용보다도
과거에 생존해 있던 부처님에 대한 동경이 바로
신앙의 원천이 되었을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경이나 찬양이 부처님을
점차 초인화 하고 신격화 하면서 새로운 종교 운동이
일어 났는데 이것이 바로 대승불교인 것입니다.
부파불교가 어려운 수행과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로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뜻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 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대승불교운동이라고 하는데,
재가신도의 적극적인 참여와 진보적인
출가인들이 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열반을 추구하는 아라한의 길을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비판하고,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자신만을 위하여 수행을 하는
것은 자리(自利)이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을 이타(利他)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만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남도 함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자리이타를 완전하고 원만하게 수행한 사람을
부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적인 보살(菩薩, bodhisattva)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열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불(成佛)에 있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야 말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하신
불교의 진정한 뜻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렇게 일어난 대승불교는 일반 재가 신도들을
포함하는 사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으며,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도 바로 대승불교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이러한 사상을 담은
교설을 편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대승경전으로서 B.C 1세기 경부터
이러한 문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기 대승경전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들은
반야경, 법화경, 십지경, 무량수경, 유마경 등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집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 졌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는데
대승경전의 결집에 대한
문헌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승(大乘)
대승은 범어 마하야나(mahayana)의 번역으로
마하연나(摩訶衍那), 마하연(摩訶衍)이라고
음역하며, 상연(上衍), 상승(上乘)이라고도 합니다.
승(乘)은 타는 것이란 뜻으로 미혹의 차안(此岸)
으로부터 깨달음의 피안(彼岸)에
이르는 교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대승이란 "큰 수레"라는 뜻으로
수레라는 말은 교리를 비유한 것이라고 합니다.
대승불교의 성립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약 100년(혹은 200년) 후
불교교단은 시대 상황과 사회상의 변화에 따라
계율과 교리의 이해와 실천을 두고
처음으로 분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열은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되어
20여 개 이상의 교단으로 분열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부파불교였습니다.
처음에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른 계율과 교리의 해석과
그 실천의 견해 차이로 분열된 각 부파들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속해 있는 자파(自派)의
당위성과 우월성을 내세우고 확립하기
위해 나름대로 교리에 대한 해석과
철학적 체계를 세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불교 교리의 체계적인 정리와 사상적
논리를 발전시킨 면도 있으나, 반대로
불교를 철학화 시키고 형이상학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결국 불교의
종교적인 측면에 있어서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고 대중들을 신앙적으로 이끌어
자는 대중의 종교가 아닌 하나의 전문화 된
불교로 만들어 세상과 단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승려 자신들도 철저한
계율관에 입각하여 지계(持戒)를 통한
개인의 해탈만을 위하여 산야(山野)에
은둔하여 수행함으로써 대중의 구원을 외면하고
종교적인 사회적 실천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반 재가불자와 일부 진보적인
승려들의 분열된 교단에 대한 불만과
외면은 점점 확산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반 재가불자와 일부 진보적인
승려들이 분열된 교단에 대해 품은 불만은
결과적으로 부파불교의 폐단을 치유하고
부처님이 살아 계신 당시처럼 불교를 대중들에게
다가가게 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대승의 운동은 부처님이 살아 계신 당시로
돌아가서 불교를 대중들에게 쉽게 전하고,
중생구원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는데 이것은 대승불교를
성립시킨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특징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전문화된 학문으로부터
실천적인 신앙으로 돌아 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하나의 운동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교단으로서 독자적인
율장도 없고 그 모습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대승불교는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안심입명(安心立命)하기를
염원했던 재가 신도들을 그 모체로 하고, 그들에게
부처님의 생애를 이야기해 주었던 법사의
일부를 지도자로 하여 일어났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 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법사들은 새로운 경전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 초기의 대승경전을 통하여 대승불교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초기의
대승경전은 불탑의 숭배를 설하고,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고 예배하기를 권하며,
보시 등의 이타행(남을 이롭게 하는 행동)
을 설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특징은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부파불교는 타인의
구제보다 자기 자신의 구제에 더욱 관심을
가졌던데 반하여 대승불교는 타인을 위한 행동이
바로자신을 위한 수행의 완성이 된다는
교리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재가와 출가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부파불교가 출가주의의 불교인데 반하여
대승불교는 재가자를 배제하지 않고 재가와
출가자 사이의 구별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승이라고 한 것입니다.
승(乘)이란 ?실어 나른다?라는 것을 뜻하고,
대승이란 크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승과 비교하여 소승은 출가하여 엄격한
수행을 하지 않으면 해탈을 얻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재가를 배제하였으므로
소승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가한 사람과 재가에 관계없이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상적인 인간상이 보살인 것입니다.
셋째 믿음(信)과 실천(行)을 주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대승불교 입니다.
쉬운 길은 이행도(易行道)를 통하여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모두 구제하려는 폭 넓은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데바닷타의 반역이라고 알려진
사건도 대승불교에서는 데바닷타도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부처님의 구제력을 중시하여 초인으로서의
부처님에 대한 많은 이론이 생겨났습니다.
이를 불신론(佛身論)이라고 합니다.
다섯째 모든 사람이
보살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살은 부처님에 대한 신앙을
기초로 하여 자기가 보살이라는 신념을 갖는 것입니다.
대승의 보살은 부처님과 똑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므로, 이는 누구나가
부처님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과 깨달음의
결과를 중생들에게 돌리는 회향(廻向, 자기가
닦은 선근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또는 자기의 불과에 돌리는 것을 말함)과
자비에 바탕을 둔 실천 덕목인
육바라밀을 중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