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상식

중국불교(中國佛敎)

갓바위 2015. 8. 18. 08:45
 중국불교(中國佛敎)   
불교의 역사 
불교는 인도에서 탄생하여 동방의 
여러 나라로 전파되어 갔습니다.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룩한 아쇼카왕은 
전쟁에 염증을 느껴 불교에 귀의하고 
포교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전세계로 보내 
불교의 세계 종교화를 이룩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와 중국, 일본을 비롯하여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는 물론 이란과 그리스, 러시아까지도 
불교를 전하기 위한 사람들이 파견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중국은 인류 문명의 발생지 가운데 
하나로 주변 나라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는데 
불교 사상과 자신의 전통사상과 문화를 융합, 
수용하면서 한국과 일본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래된 것은
 불기 611(서기67)년, 후한시대(後漢時代)
 대월지국으로부터 가섭마등과 축법란에 의해 
전해졌다고 합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노자, 장자와 같은 성격의 사상으로
 이해하였는데 이를 격의불교(格義佛敎)라고 합니다. 
격의(格義)란 다른 사상의 개념을 빌어 
풀이하는 것으로 반야 또는 공의 진리를 
노장사상을 매개로 이해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격의불교는 언어의 장벽으로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흘러 불교경전이 중국어로
 번역이 되고 사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점차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은 대개 경전의 번역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이미 초기부터 안세고, 
지루가참과 같은 역경승(경전을 번역하는 스님)
들이 있었지만 중국불교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이었습니다. 
그는 수 많은 대승경전과 율장, 논서를 번역하였는데 
그의 번역은 정확성과 문장의 미려함, 
그리고 번역 자체가 불교를 강술하는 성격을 띠어
 중국불교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구마라집에 의해 중국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며, 
격의불교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구마라집 이후 경전번역의 가장 큰 성과는 
삼장법사 현장(玄獎, 600-664)에 의해 이루어 졌습니다.
 그는 17년에 걸친 구법(求法)여행 끝에 인도로부터
 범어(梵語)경전 657부를 가지고 돌아와 무려
 75부 1,335권의 경전을 번역하였습니다. 
그의 번역은 구마라집의 번역과
 비교하여 신역(新譯)이라고 합니다.
중국불교의 또 다른 특징은 교상판석(敎相判釋)
입니다. 인도에서는 근본불교시대를 거쳐 
소승과 대승불교라는 불교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흥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대승경전과 소승경전의 
구분 없이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인들은 소승을 비판하는 대승경전 가운데 
어느 것을 기준으로 체계를 세워야 
하는가에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또한 천차만별의 중생을 위해 다양하게
 설해진 방대한 경전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리하고 체계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각자 판단의 
기준에 따라 부처님의 교설을 통일, 
정리하여 이해하려는 경향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고 하고 
줄여서 교판(敎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새로운 종지(宗旨, 한 종교
한 종파의 핵심적인 교의나 종취를 말하는 것임)가 
성립되고 이것이 발전하여 각각의 종(宗)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13개 종파가 생겨나 
교판에 따른 종파의 형성으로 중국불교사의
 특징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종파로는 구마라집의 제자 길장에 
의해 확립된 삼론종(三論宗)과 천태 지의에 의한
 천태종(天台宗), 현장법사 제자들이 세운 
법상종(法相宗), 지엄의 화엄종(華嚴宗) 및 
담란의 정토종(淨土宗)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선종(禪宗)은 불교의 가장 중국적인 
성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리 달마대사를 
개조(開祖)로 하여 2조 혜가대사, 3조 승찬대사, 
4조 도신대사, 5조 홍인대사로 이어지다가 
6조에 와서 남종의 혜능대사와 북종의 신수대사로
 나뉘어진 선종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직접 
대면하려는 직관직각(直觀直覺)의 방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선종은 당대의 교학이 문자에 
얽매여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참선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바로 
나아가는 접근법을 제시하였습니다. 
혜능대사는 이를 가르켜 "가르침 외에 별도로 
전한 교의이며 따로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敎外別傳 不立文字)"고 하였습니다. 
문자에 의하지 않고 곧바로 진심(眞心)에 
계합하기에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 하였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선종의 성립은 중국에서 불교가 
이루어 낸 또 하나의 발전이었습니다. 
복잡한 교학 연구와 현학으로 인해 부처님의 
참 뜻인 성불에서 멀어진 풍토를 일거에 
혁신하고 성불을 지향하는 불교, 
새로운 불교로 자리매김 한 것입니다. 
복잡한 교학 공부를 거치지 않고도 참선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는 자각은 모든 이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선종은 역동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卍 ~불교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선이란  (0) 2015.08.20
한국불교   (0) 2015.08.19
대승불교(大乘佛敎)  (0) 2015.08.17
소승불교   (0) 2015.08.16
원시불교(原始佛敎)   (0) 201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