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스님의 다음 생에 받을 몸

갓바위 2021. 2. 22. 09:32

 

약 1백 년전, 일본 큐슈의 조그마한 암자에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스님은 처음에는 조용히 도를 닦으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스님에게 돈을 빌려 쓰게 되면서부터 돈맛을 알게 되었다.

 

가만히 두어도 돈이 이자로 새끼를 쳐서 자꾸 불어나는 맛에 본격적인 돈 놀이꾼이 되고 만것이다.

스님은 참으로 철저하게 돈놀이를 하여 이자나 원금을 받을 날짜가 되기 10일 전이면

어김없이 돈을 빌려간 사람을 찾아가서 통보하였다.

 

"다가오는 10일이 이자를 낼 날이니 꼭 가져오시오."

"사흘 후면 원금을 갚아야 하는데, 돈은 준비해 두었소?"

 

돈을 가진 스님 앞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예 예" 하며 굽실거렸지만,

돌아서면 욕을 하고 손가락질 하였다.

"도는 뒷전인 채 돈만 밝히는 순 땡초 같으니!"

 

그러나 어느 해 여름 한 청년이 스님에게 돈을 갚기 위해 암자를 찾았다.

마침 스님은 낮잠을 자고 있었으므로 단잠을 깨우기가 싫어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때 암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청년의 눈에 뱀 한 마리가 들어왔다.

 

마루 밑 댓돌에서 대문까지 가지런하게 놓인 디딤돌 중 세 번째 돌 위에

올라앉은 뱀은 자꾸만 자신이 또아리를 틀고 앉은 돌 밑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심심하던 차에 잘 만났다.'

청년은 콩알 만한 왕모래를 주워 뱀을 향해 툭 던졌다.

'이상하다, 어째서 꼼짝을 하지 않지?'

 

청년은 '어디 보자' 하면서 굵직한 돌을 주워 힘껏 뱀을 향해 던졌고 돌은

정확히 뱀의 머리를 맞았다. 바로 그 순간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스님이 비명을 질렀다.

 

"아이쿠" 스님의 비명소리에 놀란 청년이 소리쳤다.

"스님! 왜 그러십니까?"

"어, 자네 왔는가? 어떻게 왔는가?"

 

어리둥절해하는 스님의 이마에는 시뻘건 피멍이 맺혀있었다

'아 이것이 웬 조화지?

 

내가 던진 돌은 분명히 뱀의 이마를 맞췄는데 어째서 스님의 이마에 피멍이 든 것일까?'

얼른 디딤돌을 돌아보니 뱀은 자취도 없었다.

 

"스님은 돈이 많으시지요?"

"나한테 무슨 돈이 있겠는가, 돈 없네."

"그래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스님에게 돈을 빌려 쓰잖아요?"

 

"이사람한테 돈을 받아 저 사람에게 주고

저 사람한테 돈을 받아 이사람에게 주는 거지 내게 무슨 돈이 있나."

 

"스님 저는 스님께서 돈을 감추어 두신 곳을 알 것 같습니다.

저기 세 번째 디딤돌 밑에 감추어 놓으셨지요?"

 

순간 스님은 얼굴색이 파랗게 변하면서 소리쳤다.

"이놈!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청년은 차분하게 말했다.

 

"스님 부디 조심하십시오. 스님의 육신은 방안에서 코를 골며

주무시고 있었지만 스님의 정신은 뱀이 되어 돈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온 지 한 시간가량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저 세번째 디딤돌 위에 뱀이 올라앉아 자꾸만 돌 밑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무료하던 차에 왕모래를 집어던졌는데도 맞고도 까딱하지 않기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 굵은 돌을 주워 힘껏 던져보았지요."

청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돌은 뱀의 이마를 맞았는데 비명은 왜 스님이 질렀습니까?

지금 스님의 이마에 왜 피멍이 들었습니까? 스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스님의 몸뚱이는 방에 들었지만 스님의 정신은 벌써 다음생 몸뚱이가 되어

디딤돌 밑에 있는 돈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이 일이 있고 보름 정도 지났을 때 스님은 감추어 놓았던 돈을

모두 파내어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돈을 빌려줄 때 받은 문서들은 모두 태운 다음 어디론지 멀리 떠나버렸다.

 

<불설삼세인과경>에 '만약 전생 일을 묻는다면 금생에 받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요.

만약 후세의 일을 묻는다면 금생에 짓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나는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이루어져 있고 오늘날 짓고 있는 업으로 다음 생이 결정된다.

정산종사는 제자들에게 '형상 없는 마음이나 천지 기운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아서 운심처사運心處事에 신중을 기하라' 하였다.

 

사람이 깊은 집착이나 원한이 있으면 현재의 몸으로도 다음 생에

받을 몸에 정신이 가 있어 몸과 혼이 분리되기도 한다고 한다.

다음 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인연산책(서문성엮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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