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스님 좋은 말씀

집착없이 행하는 것이 지혜다

갓바위 2021. 6. 9. 07:12

 

좋아할 때도 사랑하되, 과도하게 집착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내 사람이 되도록 집착하고, 내 눈에 붙잡아 두려고 애쓰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내 식대로의 일방적인 사랑만을

표현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집착이지 사랑이 아니다.

 

자식 공부를 혹사하듯 과도하게 시키면서 학원을 하루 종일 쉴 틈도 없이 돌린다.

물론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자식은 부모님이 시키니까 그저 어쩔 수 없이 따라 한다.

 

그것을 부모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너를 위한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왜 그럴까?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오고, 성적이 좋아야지만 성공하고, 행복하고,

잘 살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일방적이고 치우친 생각이 아닌가?

 

공부 못하면서도 잘 살 수도 있고,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

좋은 대학이 아닌 조금 나쁜 대학을 나와도 성공하고, 행복하고, 잘 사는 사람은 많다.

 

자기 생각을 절대화하여, ‘너를 위해서,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렸으니

너는 따르라’고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참된 사랑일 수 있겠는가?

 

자기 생각에 대한 고집이고, 어리석은 망상이며, 지혜롭지 못한

착각일 뿐 아니라,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그런 생각은 사실은 ‘진정 너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 부모님의 욕심도 깊이 개입되어 있다.

 

‘내 자식’이라는 아상을 강화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내 자식 잘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일수도 있다.

 

과도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사랑하고 미워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중도적인 삶이다.

 

중도적인 삶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에너지 없는 삶이라고 여기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중도적으로 사랑하고, 중도적으로 미워하면서도

충분히 에너지 넘치고 열정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

 

중도적일 때 사실은 개인적인 삿된 생각 없이 순수한 최선을 다하기 쉽다.

그리고 중도적으로 실행할 때는 결과와는 상관이 없다.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이 없으니, 이렇게 되어도 좋고, 저렇게 되어도 좋다.

그러니 괴로울 일이 없다."

 

<법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