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우리는 지금 받는 고통과 재앙들이 스스로 지은 악업의 열매가
무르익어 찾아온 것임을 알고 업을 녹이는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특히 부모, 형제, 자식 등 떨쳐 버릴래야 떨쳐 버릴 수 없고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가까운 사람과의 좋지 못한 인연 속에
처하였을 때는 더욱 넓게 마음을 열어 맺힌 업을 풀어야 한다.
실로 우리 주변에서도 가장 밀접하고 매우 좋은 사이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상대방의 가슴에 못을 박고 사라지는 경우를 접할 수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처하였을 때 과연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먼저 두 편의 이야기부터 음미해 보도록 하자.
가끔씩 나를 찾아오는 신도 남진여심(南眞如心)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라는 시조를 지은 남구만(南九萬 1629~1711) 대감의
후손으로 매우 큰 대갓집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그런데 시집을 가기 직전인 어느 날 부엌에 들어갔다가 부엌 대들보 위에서
팔뚝보다 굵고 길이가 두 길이나 되는 능구렁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악! 너무나 놀란 그녀는 순간적으로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듣고 마당에서 일하던 머슴들이 쫓아와서 보니 아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고, 구렁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정신이 없어서인지
멀뚱하게 움직이지 않다가 사람들이 온 것을 알고 장작더미 속으로 반쯤 들어간 구렁이를
쇠고랑으로 찍어 죽인 다음 냇가로 가서 불에 구워 막걸리 한 말과 함께 걸판지게 먹어 치웠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진여심은 시집을 갔고 부엌에서 본 것과 똑같은
능구렁이가 노적가리 앞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태몽 꿈을 꾸고 외동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건강하게 자랐을 뿐 아니라 어찌나 점잖은지 생전 웃는 일도 떠드는 일도 없었다.
누가 웃기는 말을 해도 피식 하고 말 뿐 껄껄거리는 일조차 없었다.
어느덧 아들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병원을 개업할 준비를 하게 되었고 그의 약혼녀 또한 약대를 졸업하여
새로 개업할 병원 옆에 약국을 차릴 작정을 하고 있었다.
또한 진여심의 남편은 명예로운 대법관까지 지냈고,
이화여대를 나온 두 딸은 좋은 남편을 만나 잘 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집안 전체의 분위기는 행복 그 자체였다.
그렇게 좋은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아들은 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무엇이 맞지 않았는지 시집간 동생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진여심은 버럭 소리를 쳤다.
"이놈의 자식이 미쳤나? 네 동생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때리느냐?"
진여심이 남편의 지팡이로 아들의 등을 한 차례 때리자
아들은 지팡이를 빼앗으며 살기등등한 눈으로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이놈아 이 애미가 때렸다. 그래 어쩔거냐? 이놈이 정말 미쳤구나..."
진여심이 다시 소리를 지르자 아들은 지팡이를 콱 부러뜨려 버리는 것이었다.
그때 마침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자 아들은 휑하니 집을 나가 버렸다.
아들과 친구들은 삼각산 골짜기로 개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잡은 다음
그 개고기를 안주 삼아 술을 실컷 먹으며 놀았다.
그리고 세검정의 시원찮은 여인숙에 들어갔다.
모두가 한 방에서 자자고 하였으나 진여심의 아들만은 한사코 고집을 부려 독방을 사용하였다.
아침이 되어 먼저 일어난 친구들은 남진여심의 아들을 깨웠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그 방에서는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연탄 과열로 비닐 장판과 함께 살이 타 버려
몸을 바싹 오그라뜨린 채 죽어 있었던 것이다.
남진여심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빠져들었다.
거기에다 남편은 당신 때문에 그 순진한 아이가
죽었다고 원망하면서 큰딸이 사는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진여심은 나날을 울음으로 지새우며 지내다가 얼마 후 나를 찾아와 애절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나는 수많은 인과응보의 사례를 들려주면서 그녀의 마음을 다소나마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자 하였고, 그녀는 참회기도를 통해 다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일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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