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편의 이야기처럼 전생의 원수가 금생의 자식이 되어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전생의 원수가 금생의 남편이나 아내가 되어
지겹도록 애태우고 괴롭히고 고생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지극한 악연은 지극히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하여 피할 일이 아니다.
멀리하고 무시한다고 하여 해결될 일도 아니다.
업보는 피하고 멀리하고 무시 할수록 더욱 깊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의 우리가 그와 같은 관계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지금의 괴로움을 달게 받겠다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고요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이켜 보라.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잘 살고 있는가?
사랑하는 이와 나의 가족을 잘 살리며 살고 있는가?
나의 직장, 나의 고장, 나의 조국을 살리며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아가 사랑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끝없이 요구하고 서로를 구속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서로를 나무라고 원망하는 관계를 맺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내 속에서 나온 놈이 어찌 저다지도 애를 태울까?
어쩌다가 저런 남편을 만나 이 고생인가........
그러나 결코 원망하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인과법을 철저히 믿고 다시 깨어나야 한다.
다시 깨어나 가까운 인연들부터 살려야 한다.
향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살려야 한다.
우리들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들은 모두가 인과응보일 뿐이다.
이 인과의 법칙을 모르면 현상을 극복할 수가 없다.
인과법을 잊고 살면 맺힌 인연의 매듭을 풀 수가 없다.
눈앞에 펼쳐진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맺힌 매듭을 풀지 못하면 불행은 끝이 없다.
인과응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원망하고 토라지고 한을 품으면 악연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원인을 뚜렷이 알 수 없는 현재의 괴로움, 현재의 불행은
모두가 지난 세상에 내가 지은 악업의 과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지고 지난 빚은
차츰 줄어들어 갈수록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일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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