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상식

좌선은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

갓바위 2023. 1. 15. 11:02

좌선은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

좌선이 끝나 일어설 때에는 천천히 몸을 움직인 후에 편안히 일어나고 갑자기 일어서지 말라.

좌선에서 일어난 뒤에는 어느 때나 항상 좌선의 방법에 의하여 선정(禪定)의 힘을 보호하고

유지하기를 어린애를 돌보듯 하라. 그러면 선정의 힘을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정의 한 문이 가장 급한 일이다.

만약 선정을 잘 이루지 못하면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망망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슬을 찾으려면 물결이 가라앉아야 한다. 물결이 일렁이면 찾기 어렵다.

물결이 가라앉아 맑고 깨끗해지면 마음의 구슬이 저절로 나타난다.

 

《원각경(圓覺經)》에 이르기를

“거리낌없는 청정한 지혜가 다 선정에서 나온다”고 하였고,

《법화경(法華經)》에서는 “고요한 곳에서 마음을 닦고,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기를 수미산처럼 하라”고 하였다.

 

범부와 성인을 뛰어 넘으려면 반드시 반연(攀緣)을 고요히 끊고,

앉아서 가고 서서 가려면(坐脫立亡) 선정의 힘에 의지해야 한다.

한 평생 힘을 기울여도 오히려 잘못될까 두려운데,

하물며 게을러 가지고야 어떻게 생사의 업(業)을 막아내겠는가?

 

그러므로 옛 사람이 이르기를

“만약 선정의 힘이 없으면 죽음의 문에 굴복 당하고,

앞이 캄캄하여 갈팡질팡 헤매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바라건대, 모든 참선하는 벗들은 이 글을 거듭거듭 읽고,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다 같이 바른 깨달음을 이룰지어다.

 

―《좌선의》―

 

실제로 좌선을 하다보면 알게 되겠지만,

좌선이야말로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이다.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인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만 앉아만 있다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고 힘든 것인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몇몇 유별난 분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잠시라도 무엇인가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듯하다.

때로는 한꺼번에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해낼 수 있어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앉아있기만 한다는 사실이 마냥 낯설기만 하다.

두렵기도 하고. 평상시에는 이일 저 일에 쫓겨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는데,

막상 앉아있으려니 생가지도 않았던 근심걱정,

계획, 회한 등등이 마구 떠올라 괴로울 정도이다.

 

다리는 피가 통하는지 안 통하는지 저려오기만 하고,

엉덩이는 배겨오고 졸음은 밀려오고, 죽을 맛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과정을 피해가서는 안 된다.

여태껏 전혀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내 육신 하나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적응이 되어 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비로소 행동을 변화시킴으로써

사고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정상에 선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인생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심지어 남들과 직접 경쟁해 쟁취하는 운동경기나

무도시합조차도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술회한다.

외로운 고도.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싸움이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가 인생에 승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선은 단순히 자신과 싸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짜 나의 허상을 여실히 바라보고, 참 나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참 나의 발견. 참 나를 본 이라야 생은 물론 죽음에 임박해서도 당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업생(業生)이 아니라, 원생(願生)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서서 죽고 앉아 죽고 심지어는 물구나무서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참 나는 항상 되고, 즐겁고, ‘나’가 있으며, 깨끗하다.

우리 모두 참 나를 돌아보자! 또한, 느껴보자!

이것을 이 생에서 이루지 않으면 언제 이룰 것인가?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