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사하촌 향우회는 올 추석에 고향 방문을 환영하는 알림글을 내걸었다.
지역을 빛낸 인물인 성철 스님의 탄신 100주년 기념전이
열린다는 현수막도 함께 펄럭였다.
두 현수막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진 걸 보면서 비로소
‘제2의 고향’에 도착한 걸 실감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이 지역에 주민등록을 둔 지도 벌써 몇 십 년이 됐다.
지금은 무덤덤해졌지만 추석 무렵이면 나타나곤 했던
‘서늘한 가슴’을 다스리느라고 한동안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 무렵에 입산했기 때문에 나타나던 일종의 추석증후군이었다.
출가 수행자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인 영원에서
영원으로라는 회고록이 최근 나왔다.
성철 스님의 유일한 혈육인 불필 스님이 생생했던 기억을 정리했다.
그동안 제3자들에 의해 구전(口傳)된 내용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1차 자료였기에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읽었다.
가족사(家族史)인 동시에 근대 100년사였고 또 현대불교사이기도 했다.
한가위 무렵이라 그런지 많은 이야기 속에서 특히 가족사 부분은 흡인력이 강했다.
불필 스님은 “이 세상 엄마는 모두 바보다”라고 단언한다.
그 이유는 불필 스님의 엄마가 “3년 만에 도를 깨치고 돌아오겠다”는
딸의 말만 믿고 진짜로 기다렸기 때문이다.
정작 당사자는 출가 이후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나 역시 절에 온 지 10년쯤 되던 어느 날 모친에게서
“이제 그마이 해봤으니 집에 오면 안 되긋나?”하는 말을 들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가출(?)하면서 내가 그런 언질을 했던 모양이다.
말한 사람은 애시당초 지킬 생각이 없기에 말한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고 있는데, 들은 사람은 지켜야 할 약속처럼 기억하고 있는
이런 이중적인 대화가 세상에 또 있을까.
성철 스님의 어머니 역시 “10년 후에 돌아오겠다”며
집 나간 아들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도록 무소식인 자식에게 물어 물어
찾아갈 때는 천생 어머니 모습 그대로였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기던 모습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움마저 풍겼다고 이 책은 전한다.
어머니는 준비한 물건을 절 앞에 있는 바위에 올려놓고
산 아래로 내려간 뒤 한참 후 다시 올라와 바위 위가 깨끗하면
아들이 가져간 걸로 생각하고 기쁘게 돌아갔다.
그러나 올려놓은 물건이 널브러져 있으면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앞이 캄캄해 하늘과 땅마저 분간되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해엔 금강산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며느리가 전해달라고 맡긴 편지는
아들의 불같은 성격을 아는 까닭에 내밀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집이 가까워지자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두 발을 더 이상 앞으로 옮길 수 조차 없었다고 한다.
절집의 ‘바보엄마’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당나라 동산양개(洞山良介·807~869) 선사는
어머니를 하직하는 글인 ‘사친서(辭親書)’를 남겼다.
‘아들은 이미 출가했으니 이제 없는 자식처럼 여기시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 뜻은 아랑곳없이 당신 스타일대로 답장을 했다.
“자유포모지의(子有抛母之意)나 낭무사자지심(娘無捨子之心)이라.”
자식은 어미를 버릴 수 있지만 어미는 자식을 버릴 마음이 없구나.
이 세상 엄마는 모두 바보다.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는 바보다.
원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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