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명의 뿌리가 꺽였구나
법정 스님은 절에 살면서 어머니를 세 번 뵈었다.
스님이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온 뒤 어머니는 사촌동생이 모셨다.
이 동생은 어려서부터 자기 어머니보다 스님 어머니를
더 많이 따랐는데, 그런 인연 때문이었을까.
한번은 스님이 모교 대학 강연이 있어 내려간 김에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친구 부인 손에 이끌려 예정에 없이 어머니를 뵈었다.
느닷없이 불쑥 나타난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한편 놀라시며 반가워하셨다.
점심을 한술 뜨고 돌아서는 길, 골목 어귀까지 따라나온
어머니는 꼬깃 꼬깃 접은 돈을 스님 손에 꼭 쥐여주었다.
어머니 마음이 담긴 그 돈을 함부로 쓰기 어려워 오랫동안
간직했다가 주석하시던 절 불사에 어머니 이름으로 시주를 했다.
두 번째 것은 광주 사시던 늙으신 어머니가 아무 예고도 없이
고종사촌 누이를 앞세우고 불쑥 스님이 사시는 불일암으로 찾아오셨다.
얼마 만인가. 수인사 외에 별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빛바랜 창호지처럼 늙으신 어머니 얼굴에서 스님은 세월을 읽는다.
스님은 손수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점심상을 차려 드렸다.
어머니는 아들 음식 솜씨를 대견하게 여기셨다는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준비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 얼굴을 보러 오신 걸까.
그날로 오시던 길을 되짚어 산을 내려가시는 어머니 배웅 길,
마침 비가 내린 뒤라 개울물이 불어 노인이 징검다리를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
징검다리에는 조계산 골짜기 물이 콸콸 소리 내어 흘러내렸다.
스님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어머니를 바짝 올려 업고 개울을 건넜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바싹 마른 솔잎단처럼 너무나 가벼워
마음이 몹시 아팠다는 스님은 그 가벼움이, 어머니 실체를 두고두고
생각케 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들 등에 업혀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세 번째 뵌 것은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직장을 대전으로 옮긴 동생을 따라 대전에 사시는 어머니르 찾아뵈었다.
많이 쇠약해진 어머니는 스님을 보시고는 전에 없이 많은 눈물을 쏟아 내셨다.
이때가 이승에서 마지막 모자 상봉.
어느 해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스님은
"아 이제는 내 생명 뿌리가 꺽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보신다.
지금이라면 지체 없이 달려갔겠지만, 그 시절은 혼자서도
결제結制를 철저하게 지키던 때라,
서울에 아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대신 장례에 참석하도록 했다.
49재는 결제가 끝난 뒤라 참석할 수 있었다.
영단에 올린 사진을 보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친어머니에게는 자식으로서 효행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모이는 집회가 있을 때면 어머니를 대하는 심정으로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보상하기 위해 그 모임에 나가신다는 스님은
"나는 이 나이 처지인데도 인자하고 슬기로운 모성 앞에서는
반쯤 기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 생명 언덕이고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고 싶을 것인가."라고 말씀하신다.
법정스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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