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 행복한가

오십이 넘으니 이제야 나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갓바위 2024. 2. 20. 10:14

 

 

오십이 넘으니 이제야 나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함께 간 딸이 불쑥 말했습니다.

“어? 나, 다리가 얇아졌나?”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 본 뒤였죠.|

“음, 글쎄~ 탈의실 거울 중에 좀 날씬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어.”

 

딸아이는 실망한 것 같았지만 거짓말로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었습니다. 진짜 모습은 원래 실망을 줄 때가 많은 법입니다.

나는 스스로 키가 작고 다부지게 살찐 체형인 것을 옛날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야 내가 목이 짧다는 것을 깨달았죠.

젊었을 때부터 깃이 좁은 옷을 입으면 답답해서 되도록 네크라인이

넓은 옷을 골랐었는데, 그건 내 목이 짧았기 때문이었나? 싶었습니다.

 

남에게 뭔가를 배우는데 서툴다는 것도 수영장에 다니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못 알아듣기 때문이 아니라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주시는데

그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나를 참을 수 없었죠.

 

그리고 나 때문에 기다리는 다른 수강생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제 저는 안 가르쳐주셔도 돼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죄송해요.”라며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초반 강좌에서 배워서가 아니라 혼자 힘으로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였습니다. 생각해보니, 6년 채 안 되는 회사생활

이후에는 줄곧 프리랜서로 혼자서 일해 왔습니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텔레비전도 본방송은 시청하지 않지만 녹화해서 부엌이나 욕실에서

재미있게 보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나만의 페이스가 무너지는 게 싫었던 것이죠.

50이 넘어서야 간신히 그런 나의 본질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실망스러운 것 투성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스스로 생각했던 것처럼 강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갱년기 이후의 무기력함으로 그것이 확실해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모습을 모르는 게 좋았을까?”라고 반문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모습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어디가 엉망인지 알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책도 세울 수 있고, 정말로 안 되겠다 싶으면 체념도

하게 됩니다. 날씬해 보이는 거울을 보며 만족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오십이 되었지만, 아직도 자신을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 부분, 잘 안 돼서 고민하는 부분이 스스로를

아직 모르는 부분일지 모릅니다. 그 점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오더 메이드(order made)’ 인생입니다.

 

나만의 사이즈로 나만의 형태를 가진, 그 어디서도 팔지 않는 인생이죠.

스스로 주문해 만들어진 인생입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나의 사이즈와 모습을 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실망하는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자신에 대해 더 많은것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인생을 가질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