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유대교의 생명력과 선원청규 제정

갓바위 2024. 3. 7. 10:57

 

 

유대교의 생명력과 선원청규 제정

참으로 희한한 종교가 있다. 유대교가 그것이다. 별로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존속해 왔다는 것이 신기하고, 최근

급증하고 있는 서구 불교도의 중심세력이 유대인들라는 점에서 고맙기도 하다.

 

구약성경에 해당하는 《토라(Torah)》와 함께 유대인들이 생활지침서로 사용

하는 《탈무드(Talmud)》의 경우 '신앙과 철학이 담겨 있는 종교서적'이라기보다

'처세와 상술을 가르치는 우화집'이다.

 

이스라엘 멸망 이후 유럽에 이주했으나 기독교로 개종하기를 거부한 유태인들은

신분의 제약을 받아 농공업에 종사할 수도 없었고 관료가 될 수도 없었기에,

본의 아니게 고리대금업이나 전당포업과 같이 '천박한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생

계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기원은 오래 되었으나

그런 시련의 과정에서 증광되어 온 것이 바로 《탈무드》이다.

 

콜럼버스 이후 식민주의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에 쏟아져 들어온 막대한 재화의

힘으로 자본주의 시대가 시작되자. 핍박 속에서 천 수백 년간 '돈을 다루는

솜씨'를 익혀 온 유대인들은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세계 경제의 중심세력으로

급부상하면서 세계정치무대의 막후에서 은밀한 조정자 역활을 하게 된다.

 

《토라》의 경우 신화적 역사 서적이기에, 그 내용에서 심오한 종교적 · 철학적

통찰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들이 애독해 왔다는 《탈무드》

역시 종교나 철학과는 별로 관계없는 처세서(處世書)일 뿐이다.

 

'JUBU'(유대인불교도)'라는 신조어가 창안될 정도로 구미의 불교도 가운데

유대인들이 특히 많은 이유는, '처세술과 상술'이라는 《탈무드》의 각박한

가르침이 그들의 종교적 갈증을 다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내용으로 볼 때 별로 종교답지 못한 이러한 유대교가 이처럼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존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규범과 의례' 의 철저한 준수'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유대교들은 몇 가지 '규범과 의례'만은 수천 년간 반드시 지켜왔다.

매주 금요일 일몰 직전부터 토요일 일몰 직후까지를 안식(安息) 기간으로 삼아

불을 피우거나 글을 쓰는 등의 노동을 절대 하지 않는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월절(逾越節), 모세가 토라를 전해 받았다는

칠칠절(七七節), 방랑하던 유목생활을 기념하는 초막절(草幕節)등이

되면 선조들의 고난을 떠올리며 종교의식을 치른다.

 

불교 율장에서도 '부처님 가르침이 오래 머물게 하는 것(正法久住)'을

율 제정의 취지로 들지만, 규범의 준수가 집단을 존속케 하는

비결이라는 이치는 비단 종교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그 어떤 사회집단에서든 콩가루와 같은 개개인을 그 집단에 결속시켜 주는

접착제와 같은 역활을 하는 것은 그 집단에서 표방하는 '이념'도 아니고

그 구성원들의 '감성'도 아니며, 그 집단에서 제정한

규범이나 의례와 같은 '형식'을 준수하는 일이다.

 

최근 조계종단에서 선원청규(禪院靑規)의 제정을 계획한다고 한다.

선원 수좌스님들이 지켜야 할 규범집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음의 종교'라는 핑계로 '규범이나 의례와 같은 형식'에 소홀했던

우리 불교계였기에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율이나 청규와 같은 규범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