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불자의 조직화

갓바위 2024. 3. 6. 10:00

 

 

불자의 조직화

이 시대의 불교인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가 있다.

불자들을 조직화하는 일이다. 이는 자등명, 법등명'하라는 부처님의 유훈에는

어긋나는 일일지 몰라도 조직화 된 셈족의 종교(semetic Religion)의

공격으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한 정당방위의 방편이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태교와 같은 셈족의 종교는 '순수한 종교'라기 보다는 '종교의

이름을 내건 사회조직이다'이다. 독단적 이념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다. 전철이나 거리에서 '예수지옥, 불신천국'을 외치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6.25즈음하여 붉은 완장을 찼던 공산당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히틀러에게 충성을 다했던 나치스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조직에 대한 이들의 충성심은 결코 종교심이 아니다.

척박한 땅에서 양을 키우며 생활하던 셈족은 그들의 생활방식 그대로를 종교로

빚어내었다. 그래서 그들이 신봉하는 성전(聖展)에는 양때-목자의 비유가

자주 등장한다 ."신은 죽었다."고 일갈했던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러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가축의 도덕'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가축들은 주인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열광'과 '공포'와 '감사'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가축의 마음'은 진정한 종교심이 아니다.

진정한 종교심이란 불이중도(不二中道)의 불성(佛性)으로,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지혜로 자각되기도 한다.

 

예수의 아가페적인 사랑이나 맹자의 측은지심 모두 이러한 불성의 한 측면이다.

종교에 따라 신성(神性), 본성(本性), 자성(自性) 등으로 표현되는 불성은 진정한

종교심의 원천이다. 그러나 종교심이 아니라 '가축의 마음'을 훈련한 종교인들은

우리 사회의 재앙일 뿐이다. 양떼와 오리 떼가 섞일 수 없듯이,

조직과 조직은 근본적으로 화해할 수가 없다.

 

가축을 키우던 방식이 그대로 투영된 셈족의 종교가 서구의 역사에서 수많은

전쟁과 사회적 갈등의 진원지였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잘못된 종교관에 있었다.

이제는 많은 서구인들이 종교적으로 성숙하였다.

진정한 종교는 제도와 조직 너머에 있다는 점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톨릭 사제이면서 참선에 심취한다. 구미에 지어진 티베트 사찰의 자원봉사자

가운데 많은 수가 개신교신자라로 한다. 'JuBu(Jewish Buddhist)'라는

신조어에서 보듯이, 유태교도이면서 불교도인 사람이 특히 많다.

종교 간에 선이 지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인들이 '진정한 종교심'에 대해 비로소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 그렇게 열린 종교관을 갖는 이웃종교인들이 아직

극소수라는 점이다. 그 동안 우리 불자들은 열린 종교관을 지켜오면서

이웃종교인들의 추태를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그들이 성숙하기 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윤리, 도덕의 수준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현실에 보조를 맞추려는 듯, 그들의 독선적인 종교관을

그 도를 더해 간다. 이를 그대로 방치랄 경우 우리 사회 전체가 불행에 휩싸일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내 종교와 남의 종교 간에 진한 선을 긋고 남의 종교를

박멸하려는 그들의 습관은 자신의 종교 내에서도 이단과 정통의 선을 긋게 만들어

결국 제2, 제3의 종교분란을 일으키고 말 것이다. 그들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불교는 '마음의 종교'이기에 불자들이 모여서 조직을 이루는것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직성'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족의 종교'로부터 우리 사회와

불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조직의 옷을 입혀야 한다.

 

이는 '착한 사라마리아인'을 칭송했던 그들의 교조를 그들이 더 이상 모독하지

않게 하기 위한 건전한 견제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들이 조직성에서 벗어나

'교회에서 염불소리, 법당에서 아멘소리'라는 성철 수님의 화두와 같은 법어가

현실이 되는 그 날이 오면, 부처님의 '자등명, 법등명'의 유훈으로 다시 돌아가자.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