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이 나라의 철부지들

갓바위 2024. 3. 7. 10:44

 

 

이 나라의 철부지들

현재 정부 요직에 오른 이웃종교인들에게 묻는 말이다.

중동을 포함하여 서구의 역사를 피로 물들인 종교분쟁의 역사를 아는가?

 

11세기 말부터 근 2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명 높은

'십자군 전쟁', 독일 인구 가운데 무려 3/4을 줄어들게 했다는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30년 전쟁',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에서 절정을 이룬 기독교도들의

유태인 학살, 북아일랜드의 가톨릭과 영국 성공회 간의 처절한

종교분쟁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살상을 할 경우 형법에 의거한 처벌을 받기에 유럽에서와 같이 타종교인에 대

한 대규모 살육을 자행하지는 못했겠지만, 8,15광복 이후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준 은혜의 나라'인 미국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위력을 배경 삼아 우리의 전통

종교에 대해 가해진 기독교인들의 공격적 선교는 거의 '살상(殺傷)수준'이었다.

 

조선시대 이후 관혼상제 의례까지 장악했던 유교는 '서구의 종교학 이론에

세뇌된' 종교학자들에 의해 '종교가 아닌 것'으로 일방적 사형선고를 받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일지감치 '미신'이라는 낙인이 찍힌 무속은 시도 때도 없이

'TV코미디'에서 조롱을 받는다. 그저 그 질긴 생명력으로 '내림굿'을 통해

계속 자연발생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서구인들이 상식으로 삼는 '교양' 가운데 하나가 타인과의 대화 도중에

'종교'나 '정치'와 관련된 얘기를 화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좌와 우의 이념적 대립의 상처와 종교분쟁의 쓰라린 과거사 교훈이 되어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던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최근 들어 '정치'적 얘기를 화제로 꺼낼 때 무척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상대방의 정치적 이념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펴다가

자칫 결례를 법할 수도 있고 의를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의 경우 그 '비극의 냄새'를 전혀 모르는지 전철이나 거리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아직도 광적인 선교행위가 버젓이 행해지고 있고,

많은 교육기관에서 기독교 교육이 강요되고 있다.

 

더 나아가 강제적인 기독교 교육의 부당성을 재판에 호소했는데 1심에서는 승소했

지만, 얼마 전 고등법원의 판결에서는 패소했다고 한다. 하필이면 그 재판을 배정

받은 판사가 고소당한 학교와 같은 교파에 속한 교회의 장로님이셨다고 한다.

그 판사분의 종교가 그 분이 내린 판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기를 바란다.

 

미국의 경우 '기독교적 창조론'을 '지적(知的) 설계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후

이를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일반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기독교 근본주의자

들이 몇 년 전 소송을 낸 적이 있는데 법원에서 가차없이 패소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도버 재판(Dover Trial)'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원은 '기독교 종주국'인 미국의 법원보다 더 막나간다.

 

며칠 전 조계종 총무원장스님의 승용차가 조계사를 나서려다 느닷없는 경찰의

검문검색을 당했다고 한다. 원장스님의 신분을 훤히 알고 있음에도,

오히려 더 검색을 해야 한다면 트렁크를 뒤졌다고 한다.

 

9.11테러를 겪은 미국에서 항공기를 타려는 사람이라면

그가 교황님이든, 목사님이든 검색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조계사를 나서는 총무원장 스님의 차를 뒤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참으로 걱정스럽다. 통계적으로는 약 1천만 신도, 정서적으로는 2천만 신도를

갖는 불교계를 우롱하고 탄압하기에 걱정스럽다는 말이 아니다.

 

누구인지 몰라도 그런 책략을 고안하거나 지시한 '상급자', 또는 '참모'의

'지적(知的)능력'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그런 관료의 지시에 대해 아무도

직언(直言)하지 못하고 말단의 경찰에게 그대로 하달되는 복지부동의

경찰행정이 걱정스럽고, 그런 관료에게 잠시하라도 국정의 일부를 더맡겨야

하는 우리 국민과 국가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스럽다는 말이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