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해마다 미황사에는 2천 개의 괘불재가 열린다

갓바위 2024. 5. 18. 08:09

 

 

해마다 미황사에는 2천 개의 괘불재가 열린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도 언젠가는 변화되고 허물어지고 사라진다. 그러나 허망할 것도 없다.

완성된 만다라는 이미 바라보았던 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모래 만다라를 완성하는 그 긴 과정이 삼매이고, 그 행위 안에 수행이 깃들어

있었기에 모래 만다라는 그저 허상이라는 것, 그 깨침을 위한 그림이 만다라다.

만다라는 본질을 뜻하는 만달Mandal과 소유를 뜻하는 라la가 더해진 말로,

'본질의 것', '본질을 소유한 것', '본질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티베트 만다라는 평면적이지만 괘불재는 입체적인 만다라이다.

해마다 열리는 미황사 괘불재는 1년 전부터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다음 해에는 어느 날이 날씨가 좋을지,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날은 언제일지

날짜를 잡을 때부터 괘불재는 시작되는 것이다.

 

괘불재의 주제는 무엇으로 할지,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의 선물을

안겨줄지 등, 꼼꼼하게 하나하나 긴 호흡으로 준비한다.

괘불재는 추수감사제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한 해 동안 농사지은 수확

물을 부처님 그림 앞에 공양물로 올리는 데, 이 행사가 괘불재의 백미이다.

 

호박 농사를 지은 이는 호박을, 고추 농사를 지은 이는 고춧가루를,

참깨 농사를 지은 이는 참기름을 찹쌀 농사를 지은 이는 찰떡을,

배 농사를 지은 이는 배를, 김 농사를 지은 김을 올린다.

 

초등학생은 공부잘해 받은 상장을, 대학생은 감동 깊게 읽은 책을,

연구자는 논문을 공양물로 올린다. 온갖 다양한 공양물이 오르기에 우리는

이것을 만물공양이라 부른다. 자신이 지은 각각의 농사를 부처님께 올리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만물공양을 올린 이의 정성스런 삶 그 자체다.

 

내 앞에 놓인 건 공양물이지만 내가 본 건 1년 365일을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온 마음으로 노력한 삶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삶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괘불재를 한 달여 남겨 두고 절집은 각자 소임을 맡은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로 분주하다. 홍보물을 만들어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연등을 만들고, 과일을 씻고, 나물을 다듬고, 선물을 포장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풀을 베는 등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쁘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제 역활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 괘불재의 진짜 고갱이다.

괘불재를 마치고 마당에 홀로 서서 다시 고요 속에 깃든 경내를 둘러본다.

끝남은 허망함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남이다.

 

오랫동안 준비하는 과정들이 삼매 수행이었고,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아름다운

영산회상(靈山會上,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을

만들어 냈다. 2천여 명의 사람들이 괘불재의 광경을 뿌듯하게

바라보았고, 기쁘게 참여했다.

 

그리고 지금, 저마다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지만 끝이 아니다. 2천여 명의 가슴속

에 괘불재의 뜻과 감동이 살아있을 터이니 이것이야말로 새로 태어남이 아닌가.

2천여 개의 괘불재로 재탄생했다고 믿는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물흐르고 꽃은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