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수행자와 수감자의 결정적 차이

갓바위 2024. 5. 21. 19:52

 

 

수행자와 수감자의 결정적 차이

퍼스 시에 있는 교도소를 방문했을때의 일입니다. 저는 조그만 강당 안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히 앉아 있는 죄수들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 교도소의 수감자 백삼십 명 중 백오 명이 저의 명상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어쩌다가 나쁜 행동을 한 사람들이지만 저한테 가르침을 배우러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전 감동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들이 왜 명상 강의를 들으러 왔는지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계속 말을 하고 있는데, 몸집이 제법 큰 한 남자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명상을 잘하면 공중부양을 해서 감옥의 벽도 넘어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저는 꽤 그렇게 많은

죄수들이 강당에 앉아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은 공중부양술을 배워서 교도소 담을 넘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엇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중부양은 영상을 오랫동안 수행한,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방문했을 때는 강당 안에는 세 명만이

덩그러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도 제 강의가 끝나자 한남자가 물었습니다.

 

"스님, 절에선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지내십니까?"

저는 대답해주었습니다.

"우선 새벽 네 시에 일어납니다."

그가 네 말을 끊고서 다시 물었습니다.

 

"새벽 네 시요? 이곳에 있는 살인자도 그렇게까지 일찍 일어나진 않습니다.

그러면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텔레비젼을 보십니까?' 저는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절에는 켈레비전이 없습니다. 주로 명상을 합니다."

 

그가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아침밥은 무엇을 잡수십니까?"

웃음을 터뜨리며 저는 대답했습니다.

"시리얼 한 컵 먹습니다."

그가 깜짝 놀란 눈으로 말했습니다.

 

"여기 감옥에서 우리는 배어컨, 달걀, 시리얼, 국수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님 오전에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저는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지붕 고치는 거 보셨나요? 저도 절의 지붕에 올라가서 그런 일을 합니다." 그가 말했다.

 

"감옥에선 절대로 힘든 일을 난 시켜요. 그러면 스님께선 점심밥은 무엇을 드십니까?"

절에 와서 공양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절에선 음식을 다 섞어서 먹는다고 제가

말했습니다. "스파케티 속에 딸기 아이스크림을 따로 올려놓고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는 음식을 섞으면 맛이 없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감옥에선 독방에 앉은 죄수라고 해도 아이스크림 한 스푼, 카레와 밥 모두

분리해서 먹습니다." 그는 수행승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습니다.

"점심 식사가 끝나면 탁구 같은 운동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할 수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수행승들은 정말 느립니다. 항상 알아차려야 하기 때문에 공을 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농구를 하면 모든 사람이 공중 부양을 해서 공을 다 넣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 선수들에게 경기를 잘하라는 뜻에서 명상 수행법을 가르치기도

한답니다. 절에선 스포츠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오후 내내 명상만 합니다."

다시 그가 물었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때로는 지루하기도 합니다."

그가 저녁 식단을 물었습니다.

저녁밥은 몇 시에 무엇을 드십니까?"

저는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녁밥은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오늘은 제가 일곱 시 십사분쯤 아침밥을 먹은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저녁에 식사를 하지 않은 것은 제가 속한 불교의 전통입니다."

 

그가 또 질문했습니다. "침대에 눕는 시간은 몇 시입니까?"

저는 침대가 아예 없다고 했습니다.

"침대요? 스님들은 침대 같은 게 없습니다. 그냥 바닥에서 잡니다."

 

이렇게 질문과 대답이 끝나자, 자신이 죄수라서 조악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는, 수행승들이 감옥 안에서의 자신들보다 더 힘들게 지낸다는 사실에

감짝 놀란 눈치였습니다. 그는 저한테 차라리 감옥에서 지내는 게 편안하지

않겠냐고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침대에서 자고, 음식도 분리해서 먹고, 운동도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는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주었습니다.

 

간수 한 사람만 주먹을 쳐버리면 한 삼 개월 정도 혼자 지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절에 있는 수행승들의 경우, 감옥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할 걸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교도소에는 어떻해서든 그곳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만 많습니다.

 

반대로 절의 수행자들은 머무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두 곳의 차이점은 무엇이겠습니까?

감옥이냐 자유냐의 차이는 그 안에서의 삶이 얼마나 편안한가와는 아무런

상관 없습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마음뿐입니다. '여기"에 있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곳이 어디든 머물고 싶지 않다면 감옥입니다.

 

반면 감옥이라도 계속 머물고 싶다면 그곳에서의 삶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저는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일본 측에선 저한테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 숙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저는 피곤해서 혼자 명상을 하고 싶었는데 호텔은 시끄러웠습니다.

 

저를 초대한 사람은 배려하는 마음으로 좋은 호텔을 예약했겠지만,

저에겐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그 호텔 방에 있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이라도 감옥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호텔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 어리석은 마음 상태를 깨닫고 다시

명상에 집중할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자신이 그곳에 있고 싶지

않다면 모두 감옥인 셈입니다. 어디에 있든 자기 자신이 늘 자유로워야 합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결혼 상태에 머물고 싶지 않다면,

그 결혼은 감옥입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회사에 가고 싶지 않다면 그 사무실도 감옥이 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곳에 앉아 있는데, 여기 있기 싫다면 그것 또한 감옥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드는 수많은 감옥들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남편을 바꿀 필요도 없고, 직업을 바꿀 필요도 없고,

이 자리를 떠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그 태도만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 있기를 원하는 마음, 그것이 감옥입니다.

그러니 '여기 있기'를 바라면 됩니다. 마음이 들뜨고 안정되지 못하는 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여기 있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경험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여기 있고 싶어 하는 한 여러분은 자유롭습니다.

슬프고 웃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