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능정관음

갓바위 2021. 4. 24. 08:37

방경일글ㆍ남종진그림

 

능정관음 (能靜 능히 조용하게 만들다)

 

개봉에 장씨 성을 가진 큰 부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연이어 장가를 가는 바람에

세 명의 며느리가 장씨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세 며느리 모두 장씨 집 대문에 들어오는 날부터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며느리들은 항상 큰 소리로 다투어 집안이 화목하지 못했는데,

집안의 개와 닭도 안녕하지 못할 정도였다.

 

게다가 이웃들도 이들의 싸움에 싫증이 나

반감을 가지는 바람에 장씨네 사람들과는 교제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비구니 스님이 장씨 집안을 찾아왔다.

장씨 집안은 독실한 불자 집안이라 스님은 환영받았다.

 

시어머니와 세 며느리도 스님을 보기 위해 모였다.

그러자 스님은 고부들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을 들려주었다.

 

정靜과 혜慧는 바다와 같아 닦기 어렵고

인간세상이 만들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으로 항상 관자재보살을 생각하면

감로수가 널리 뿌려지게 되어 스스로 원만해질 것이다.

 

게송을 들은 장씨네 고부들은 그 의미를 깊이 새겼다. 그때부터 장씨네 고부들은

더 이상 다투지 않고 서로를 집에 찾아온 손님처럼 대하니 집안이 자연히 화목해졌다.

위의 이야기에 나온 게송의 의미는 한마디로 말해 '이 우주에 비하면

하루살이 같은 인생인데 싸우면서 세월을 보내면 안된다'는 것이다.

게송의 이런 뜻을 능히 짐작한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어찌 계속 다투면서 지낼 수 있겠는가.

 

중략

유송劉宋 (元嘉, 424~453) 연간에 고매顧邁는 배를 타고 석두성

(石頭城 유송의 서울인 건강에 있으며, 오나라의 손권이 쌓았음)을 출발했다.

 

그런데 도중에 휘몰아치는 바람과 용솟음치는 물결을 만나게 되니 상황이 매우 위급해졌다.

고매가 급히 <고왕관세음진경高王觀世音眞經>을 10여 번 읽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끊임없던 바람과 파도가 그쳤다. 게다가 군대가 진陳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고 박달나무 향 냄새가 코를 찌르더니 어느새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고왕관세음진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고왕경高王經>이다.

그런데 고배가 읽은 것은 <고왕관세음진경>이 아니라 <구경관세음경>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고매가 능정관음이 아니라

고왕관음(유리관음)에 의해서 구조를 받은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그 자세한 내막은 유리관세음보살이 손경덕 거사를 구한 이야기의 배경 설명에 나온다

(23.유리관음편 참조) 아무튼 고매는 파도를 잠재워 버릴 능정관음에 의해 구원을 받은 것이다.

능정관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 더 살펴보자.

송나라 휘종鰴宗 숭녕(崇寧 1102~1106) 연간의 일이다.

호부시랑 듀구劉逵가 급사중 오식嗚拭과 함께 고려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4일 정도 지나서 군산에 이르렀다

그런데 구름이 가리고 달빛도 없이 아주 어두워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다.

 

선장이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더니 보타산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관세음보살을 외쳤다.

그러자 잠시 후에 기이한 빛이 바다에 가득 해서 대낮과 같았다.

아주 멀리 초보산招寶山방향이 보였고 일행은 무사히 해안에 상륙할 수 있었다.

유규와 오식이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 간 이야기는 서긍(徐兢 송나라의 문신)이

1123년 고려에 와서 1개월 동안 머무르고 돌아가는 과정을 모두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40권에 나온다. 따라서 위의 이야기는

유구 일행이 상륙한 곳은 송나라 땅이 아니고 고려 땅일 가능성이 높다.

 

중략

여러가지를 고려해 볼 때 유구 일행은 바람을 잘 탄 덕분에 정해를 출발한 지 4일 만에

군산(고군산열도) 앞바다에 도착했는데 급변한 기상 상황으로 인해 방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관세음기도를 통해 보인 초보산을 중심으로 해서 방향을 잡고

군산의 섬들 가운데 한 곳의 해안으로 상륙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독특한 점은 국제적으로 관음기도가 통했다는 것이다.

33관음과 관련된 이야기는 대부분 중국에서 발생했지만 이 경우는 고려의 바다에서 일어난 일이다.

 

또, 이야기의 내용을 봐서는 파도와 상관이 없다.

너무 어두워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바다에서 방향을 상실하면 표류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 사망하게 된다.

 

그래서 선장이 사색이 된 것인데 다행히 관음기도를 통해 살아난 것이다.

선장과 선원들은 송나라고 귀국해서 외국의 바다에서 한 신기한 경험을 동료들에게 이야기했을 것이고,

이야기는 확대 재생산되어 송나라 선원들 전체에게 퍼졌을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당시의 뱃사람들에게 능정관세음보살을

말 그대로 '해로海路의 수호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능정관음은 바닷가에 앉아서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남종진 화백의 능정관음도에서도 보면 사실은 우리 소나무가 옆에 있는

해변의 바위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마치 바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달려갈 것 같은 자세다.

 

보살은 방향을 잃은 배의 사람들에게 나침판 역활을 해주고,

파도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파도를 잠재워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인지 보살의 머리 뒤로 보이는 후광도 물빛을 하고 있다.

 

 

능정관음은 <<법화경>><보분품>의 '보석등을 구하겨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쁜 바람을 만나 나찰이나 귀신의 나라에 표류하게 될 경우

 

한 명이라도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모두 무사하게 될 것' 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고매와 유규의 경험과 같다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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