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보관음 (갖가지 보배)
남종진 화백의 중보관음보살도를 보면 장신구는 다른 보살들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굳이 보물을 들라면 머리위 후광이 금가루가 든 물감으로 칠해졌다는 것이다.
오른 손가락이 땅을 가리키는 것은 일반적인 중보관음상에 부합하지만
왼손이 무릎위가 아니라 땅을 짚고 있는 것은 다른 점이다.
중략
강북 지방의 백성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가난했다.
그들 가운데 만万씨 노인은 불교를 믿었는데 예전부터 집안에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공양했다.
중보관음이라고 불리는 이 보살상은 몸에 보물들이 걸려 있었는데 만씨 노인은
아무리 어려워도 그 보물들을 팔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씨네 사람들은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틈날 때마다 정성을 다해
중보관음에게 절을 했는데 그 진실한 마음은 마침내 관세음보살을 감동시켰다.
관세음보살의 도움으로, 열심히 일한 만씨네는
날이 갈수록 사정이 좋아져서 마침내 집안이 번창하게 되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이 다투어서 본받으니
강북 지방에는 집집마다 한 분의 중보관음상을 모시고 공양하기 시작했다.
물론 보물들은 진품이 아니었지만 만씨 노인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모두 집안이 번창하게 되었다.
위의 중보관음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첫째, 관세음보살에 대한 믿음이 한결같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씨 노인은 집안이 넉넉할 때나 힘들 때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중보관세음보살을 모시고 공양했다.
이는 소위 '말뚝신심'이라 불리는 마음으로 어떤 경우에도 그 믿음이 변치 않는 것이다.
작은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을 위한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불자라면 어던 경우에도 불보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둘째,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절에 가는 것보다 집안에 불보살상을 모시고 기도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집안에 불보살상을 모시고 기도하는 것이 더 어렵다.
집안에 불보살상을 모시지 않은 사람들은 절에 가 불보살상을 보면
자연히 정성스런 마음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집안에 불보살상 모신 사람들은 처음에는 정성을 다 하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건성이 되기 쉽다.
그러니 만씨네의 경우처럼 집안에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기도하는
불자의 정성이 그 정도는 되어야 불보살의 감응을 받는 것이다.
셋째, 사람들 스스로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씨네 가족들은 관세음보살에게 절만 하면서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소원을 빌었지만 스스로도 열심히 일했다.
비유하자면 감나무 밑에 누워서 입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식으로 복을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스스로 복을 만드는 작복作福은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복을 바라는 구복求福만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면 결국 관세음보살을 원망하고 신심을 버리게 된다.
넷째,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했다는 점이다.
만씨네 가족은 틀림없이 사람들을 대할 때도 한결같이 정성을 다했을 것이다.
만씨네 가족이 그러니 주변 사람들 모두 그들을 대할 때마다 좋은 마음을 내었음이 틀림없다.
어떤 사람들은 만씨네 가족이 건강하기를 바랐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만씨네 가족들이 부자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은 만씨네가 어찌 부자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섯째, 관세음보살을 대하는 마음으로 일했다는 점이다.
모든 일을 할 때 건성으로 하는 것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하는 것과는 결과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만씨네 가족은 관세음보살을 대하는 마음으로 일을 했을 것이니
하는 일마다 그 결과가 좋았을 가능성이 높다.
매사에 이런 식이었다면 천재지변을 당하지 않는 다음에야 가난은 일시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중보관음은 33응신 가운데 장자의 몸으로 나타난다.
장자는 요즘 말로는 재벌이니 부를 주는 중보관음과 잘 어울리는 응신이다.
현대에도 부자들 가운데 세상 사람들에게 부를 환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이야말로 현대판 중보관세음보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불자들이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일은, 중보관음에 의지하여
보물을 얻으려는 생각에 너무 집착하다가 마음의 나찰귀국으로 떨어지거나
스스로가 나찰이 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