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경관세음 보살의 청경靑頸은 '푸른 목'을 의미한다.
푸른색을 뛰게 된 까닭은 중생을 위해 독을 마셨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에 선한 신들과 악한 신들이 끊임없이 싸움을 벌였다.
승부가 나지 않는 싸움에 지친 신들은 비슈누 신을 찾아가 중재를 요청했다.
그러자 비슈누 신은 젖은 바다를 휘젓는 줄다리기 경기를 해서
불사의 음료인 암리타를 먼저 찾는 쪽을 승자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신들은 편을 갈라서 줄을 잡고 젖의 바다를 휘젓기 시작했다.
그들의 옆에는 지슈누가 거북이로 변해 심판을 보고 었었고
참관인으로 초청된 브라흐마 신과 시바 신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잇었다.
문제는 줄의 재료로 제공된 바수키라는 이름의 나가(뱀)였다.
88명의 선신과 92명의 악신들이 바수키의 몸통을 반대방향으로 돌리자
고통을 참지 못한 바수키가 독액을 뿜어내고 만 것이다.
바수키가 토해 낸 독성이 너무 강해 경기에 참가한 신들이 감당할 수 없었다.
독약이 넘쳐흘러 중생들의 세상으로 흘러갈 지경이 되자
신들이 비슈누와 브라흐마, 그리고 시바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시바 신이 입으로 독액을 모두 빨아들여 마셔버렸다.
그 덕분에 독액은 중생들이 사는 세계로 흘러들어가지 않았지만
엄청난 독성으로 인해 시바의 목은 파란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불자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는, 시바 신을 관세음보살의 한 화신으로
받아들여 목이 푸른 관세음보살 즉 청경관세음보살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인드라 신이 불교로 들어와서 제석천이 되고 브라흐마 신이
불교로 들어와서 범천이 된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유해교반乳海攪拌이라고 불리는 위의 이야기는 힌두교의 유명한
문학작품인 '바가바타의 푸리나(Bhagavata-Purana)'에 실려 있다.
바가바타 푸리나의 기원은 2000~2300년 전의 마투라(Mathura,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의 오른쪽에 있음. 불교미술의 중심지로 유명) 지역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2000~2300년 전이라면 불교에서 보살이란 개념이 퍼져나간 시기다.
또 관세음보살이 등장하는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들이 2000년 전 무렵에
문자화된 반면에 바가바타 푸라나가 1000년 전 무렵에 문자화된 것을
감안하면 힌두교의 시바신이 오히려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푸르게 변한 목은 중생을 위한 자비심을 의미하므로
청경관세음보살은 불자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경관세음보살이 중국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낳았을까?
명나라 때의 일이다.
가일봉贾一峰은 배를 몰고 이곳저곳 물건을
팔러 다니는 상인인데 집으로 돌아갈 때가 다 되어 꿈을 꾸었다.
하나의 머리에 세 개의 얼굴을 한, 목이 푸른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더니
가일봉에게 "다리를 만나면 배를 멈추지 말고, 기름을 만나면 머리에 바르라.
한 말은 세되의 쌀이요, 파리는 붓끝을 받든다"라는 것이 아닌가.
꿈속의 일들이 너무나 선명해서 가일봉은 관세음보살이 한 말을 그대로 기억할 수 있었다.
도중에 가일봉의 배가 다리 밑에 정박하게 되었는데
관세음보살의 말이 생각난 가일봉은 급히 배를 몰아 다리 밑에서 빠져 나왔다.
그 순간 다리가 무너져버렸으니
가일봉의 배가 그 밑에 있었으면 그는 살아남기 힘들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가일봉은 아내의 실수로
여자들이 머리에 바르는 기름을 뒤집어썼다.
얼른 물을 떠온 아내가 머리를 감을것을 권했지만
관세음보살의 말이 생각난 가일봉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거절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자 가일봉의 아내는 자신이 머리를 감았다.
집에 돌아와 긴장이 풀려서인지 가일봉은 곧 잠이 들었다.
잠을 푹 잔 탓인지 다음날 아침이 되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난 가일봉은
혼비백산할 정도로 놀랐다. 아내가 칼을 맞고 죽어 있었던 것이다.
곧 가일봉은 아내를 살해한 죄로 잡혀 현의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변고를 알게 된 처가식구들이 가일봉을 범인으로 고발했기 때문이었다.
가일봉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결국 사형을 언도받았다.
당시 사형수들에게는 대한 최종결정은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순안어사
巡按御使라는 고관이 처리했는데 마침 순안어사가 가일봉이 사는 현에 왔다.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의 이름 위에는 점을 찍게 되어 있었으므로 순안어사는
죄인들의 이름이 적힌 책을 펴고는 사형이 결정된 죄수들의 이름 위에 점을 찍어나갔다.
그런데 순안어사의 붓이 가일봉의 이름 위에 이르자
주위에 있던 파리들이 몰려들어 붓끝에 달라붙었다.
순안어사가 몇 번이나 붓을 휘굴러 파리들을 쫓고 나서
점을 찍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순안어사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파리들이 붓끝을 감싸안고 있었다.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낀 순안어사는 가일봉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가일봉은 순안어사에게 청경관음을 만난 꿈 이야기와 관세음보살의
지시를 따랐던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아내가 갑자기 죽은 것도 억울한데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죽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도 했다.
가일봉의 이야기를 듣고 난 순안어사는
크게 놀라면서도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안어사는 관세음보살의 말 중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한 말은 세되의 쌀이요(斗谷三什米)'란 구절에 주목했다.
"한 말에 세 되라..... 아, 한 말이 세 되가 되는 것은
벼 한 말을 탈곡(脫穀 껍질을 벗김)했을때가 아닌가!
범인의 이름이 미삼米三인가?
가만... 겨는 일곱 되가 되니 강칠糠七일 수도 있겠군."
생각이 여기에 이른 순안어사는 즉시 현에 사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적은 인명부를 가지고 오게 했다.
인명부에는 미삼米三이나 강칠糠七이란 이름은 없었지만 강칠康七이란 이름은 있었다.
강糠과 康은 달랐지만 '캉Kang'으로 발음이 같았으므로 순안어사는 즉시 강철을 잡아들였다.
강칠은 계속되는 심문 끝에 마침내 사실을 털어 놓았다.
가일봉의 아내와 눈이 맞은 강칠은 아무도 몰래 가일봉을 죽이러 들어갔다.
그런데 너무 어두워 여자들이 바르는 머릿기름으로 남녀를 분간하는 바람에
머릿기름을 뒤집어 쓴 가일봉이 아니라
머리를 감은 가일봉의 아내가 칼을 맞고 죽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살아난 가일봉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평생 청경관음을 잘 모셨다.
가일봉의 이야기의 경우처럼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청경관음은
네개의 팔을 가지고 있으므로 삼면사비三面四譬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른다 .
관세음보살의 이런 모습 역시 불교가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힌두교에 영향을 주어 삼면사비의시바 신이 나왔을 수도 있다.
천수천안千手千眼관세음보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종진 화백의 그림에서 청경관음보살은 일면이비一面二譬이며 목에 푸른 기운도 없다.
자세 역시 오른무릎을 세우지 않았고, 손도 연꽃을 잡고 있다.
전형적인 청경관음과는 거리가 멀다. 배경도 우리의 농촌풍경이다.
억울한 옥살이에서 풀려나게 하거나 화를 복으로 바꿔주는 청경관음이라면
이 그림에서처럼 우리 조상과 친했던 관세음보살은 청경관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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