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비 관음의 의미를 알려면 우선 보비普悲의 두 글자를 각각 따로 살펴봐야 한다.
普는 '널리','두루' '모든 방면으로', '가엾게 여겨 도움을 주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보비는 '널리 가엾게 여겨 도움을 준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불교에서 비悲는 자慈와 떨어질 수가 없다.
특히 보비관음이라고 부를 때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보비관음을 보자普慈관음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단어는 관세음보살과 연관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은 간절하게 자신의 도움을 원하는 중생에게는 누구든지 자비를 베푸는 분이다.
자慈는 '사랑', '어머니', '인정'등의 의미이므로 자비慈悲는
'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사랑하는 중생을 가엾게 여겨 도움을 주다.'는 뜻이 된다.
너를 사랑하지 않지만, 혹은 너를 미워하지만 가엾게 여겨 도움을 주는
그런 것은 관세음보살이나 불교의 자비가 아니다.
따라서 보비관음의 의미는 '널리 자비를 베푸는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다른 관세음보살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보비관세음보살의 특징은 '널리'에 있다고 봐야 한다.
보비관세음보살이 어떻게 보비普悲했는지.
즉 널리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는지 다음의 이야기에서 알수 있다.
북송때의 일이다. 강남에서 고高씨 성을 남자가 전장(錢莊 돈을
빌려주는 곳으로 지금의 은행과 같은 역활을 함)을 열었는데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
고씨는 나이가 많아지자 아들에게 전장의 경영을 맡기고
자신은 불보살에게 공양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데 몰두했다.
그런데 전장의 경영을 맡은 그의 아들은 나이가 적고 경험이 많지 않아서 일 처리가 매끄럽지 못했다.
게다가 점원들과의 관계도 화목하지 못했고, 나아가 서로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젊은 주인과 점원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시기했다.
가게 안은 조용하지 못하고 매일 그들이 시끄럽게 다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장의 경영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한 명의 점원이 들어왔다.
이 점원은 붙임성이 좋았기 때문에 다른 점원들은 물론이고 젊은 주인과도 친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 신입 점원이 전장 사람들의 중심이 되었는데,
그는 알게 모르게 젊은 주인과 점원들 사이를 원만하게 만드는데 노력했다.
신임 점원의 이런 노력으로 오래지 않아 젊은 주인과 점원들은 화해했다.
그들이 뜻을 모아 한마음으로 단결하자 전장의 경영은 곧 이전 상태로 회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주인과 점원들을 화해시킨 신입 점원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여기서 신입 점원은 관세음보살이 변신한 모습이다.
전후사정을 모두 알게 된 과나세음보살이 젊은 주인의 아버지인 고 거사가 특히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겨 전장에 취직해 문제를 해결해 주었던 것이다.
만약 관세음보살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장은 망해버리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 고 거사가 아들을 해임하고
다시 사장으로 복귀하여 경영을 정상화시켰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왜 관세음보살은 굳이 과녀를 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불경한 생각이지만- 관세음보살이 좀 주제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냥 놔둬도 될 곳에 관여하기보다는 다른 절박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보비普悲의 묘미가 있다.
만약 고 거사가 다시 전장의 사장을 맡게 된다면 경영은 전처럼 회복되겠지만
그의 아들은 완전히 체면을 잃게 되고 나아가 경영의욕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또 고 거사는 자연히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에 소홀하게 된다.
이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손실이다. 나아가 점원들도 구제해 주었다.
그들도 사장과 마찰을 일으켜 경영을 악화시킨 책임이 있으므로 자리를
보전하기가 힘들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직장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관세음보살은 전장의 일에 관여하여
네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이일들 얻게 하였다.
이렇게 한 번 움직여 널리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니
어찌 보비관세음보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장 이야기의 보비관음처럼 일을 처리하는 것을 잘 나타내는 단어가 바로 묘옹妙用이다.
묘용은 여러 가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중략
그렇다면 보비관세음보살은 어떤 모습일까?
보비관음은 양손을 모아 앞으로 늘어뜨리고 있는데 옷으로 가리고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손을 보여주지 않는 까닭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필자는 이것이 바로 보비관음의 묘용을 상징한다고 본다.
살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일을
손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손은 일을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묘수妙手라는 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묘수는 바둑이나 장기에서 생각해 내기 어려운 수를 말하지만
묘한 기술이나 방법 그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보비관음의 숨겨진 손을 묘용으로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보비 관세음보살의 또 다른 특징은 항상 산의 정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산의 정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인간세상이 아주 잘 보인다.
보살이 왜 이런 곳에 머물까?
이는 보비관음이 항상 중생들을 살펴보면 그들을 도울 방법을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보비普悲의 비悲, 즉 자비인 것이다.
남종진 화백의 보비관음도는 전형적인 보비관세음보살의 모습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구름에 싸인 가운데 중생들이 사는
아래쪽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에는 자비심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보살의 몸 주변에에는 은은한 광채가 보인다.
남 화백의 설명에 의하면 이는 관세음보살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생명의 에너지다.
그렇다면 왜 남화백은 유독 보비관음에만 이 생명의 에너지를 표현해 놓았을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표현하면서 보는 사람들이 보비관음의 강력한 생명 에너지를 받아 가기를 기원했다.
아울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치유능력도 그 에너지에 실었다.
그래서 병이 있는 사람은 완쾌되고, 없는 사람이라도 더욱 건강해지기를 기원했다.
치유능력을 가진 감로수를 의미하는 작은 시내가 보비관음의 옆에서 흐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남 화백의 이런 생각은 실로 보비관음의 자비심과 잘 통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보비관음에만 생명 에너지가 표현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신력의 작용 때문인지 남 화백이 전국의 사찰을 돌며 가진 33관음
전시회 중에 오랜 지병이 치료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나무보비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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