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마랑부관음

갓바위 2021. 5. 3. 08:58

방경일글ㆍ남종진그림 

 

33관음 가운데 가장 독특한 분이 바로 마랑부관음이다.

마랑부馬郞婦는 '마랑의 아내'이니 마랑부관음은 '마랑의 아내인 관세음보살' 이란 뜻이다.

관세음보살이 변신하여 마랑의 아내가 되었다는 말이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당나라 때 나라 안의 대부분 지역에 불교가 융성했다.

그런데 수도인 장안長安의 북쪽 지방(지금의 섬서성 연안의 동부지역)

사람들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심이 없었다.

 

헌종(憲宗 778~820) 황제 때의 어느 날 나이 많은 노파가 젊은 딸을 데리고 이 지방에 살러 왔다.

한 마을에 자리를 잡은 모녀는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갔는데 솜씨가 좋아 곧 일감이 넘쳐났다.

 

문제는 보덕각시라는 이름을 가진 딸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그 마을뿐만 아니라 그 지방 전체의 총각들이 보덕각시를 사모하게 되어 상사병이 날 지경이었다.

 

아들이 보덕각시에게 장가들려고 자리를 펴고 눕게되자

부모들은 너 나 할것 없이 보덕각시 집에 중매인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덕각시가 중매인들에게 날짜와 시각, 그리고 장소를

지정해 주고는 신랑 후보자들을 불러 모아 달라고 했다.

 

약속한 날이 되자 신랑 후보자들은 서둘러 지정된 장소로 향해 달려갔다.

시각에 딱 맞추어 온 보덕각시는 짐꾼들이 가져온 책을

신랑 후보들에게 한 권씩 나눠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저의 신랑이 되겠다는 분은 수백 명이고,

저는 한 명이니 부득이 시험을 통해서 신랑을 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좀 전에 여러분에게 나눠드린 책에는 <<법화경>>에 있는 <보문품>이 쓰여 있습니다.

한 나절 만에 이를 전부 외우는 분을 저의 신랑으로 맞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해 주십시오."

 

수백 명의 신랑 후보자들은 보덕각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보문품>을 외우기 시작했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옆 사람이 읽는 것을 따라 읽었다.

 

수백 명이 경을 외우는 소리가 주변에 가득 차니 구경 나온 사람들이 보고 마냥 신기해했다.

드디어 한나절이 지나 보덕각시가 직접 테스트를 하니 50명이 <보문품>을 모두 외웠다.

그러자 보덕각시는 다시 이 50명에게 <<금강경>>을 나눠주며 외우게 했다.

 

<<금강경>>은 <보문품>의 두배나 되었지만 신랑후보들은 밥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금강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 진행된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은 10명이었다.

그러자 보덕각시는 다시 10명의 신랑 후보를 모아 놓고

<<법화경>> 전체를 사흘 안에 다 외우라는 과제를 냈다.

 

문장을 외우는 것에는 자신이 있는 10명의 신랑 후보들도 10권이나 되는

<<법화경>>을 보더니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천하제일 미녀에게 장가들려면 사흘 안에 다 외울 수밖에!

 

드디어 약속한 사흘이 지난 날 아침에 보덕각시 앞에 나타난 사람은

한 명뿐이니 그가 바로 마랑이었다.

 

유일한 신랑 후보가 된 마랑은 보덕각시가 합격을 선언하자

마랑은 뛸 듯이 기뻐했고 구경 온 사람들도 부러워하면서 축하해 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거행된 혼인식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갑자기 신부가 몸이 아프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놀란 신랑은 물론이고 마랑의 아버지도 걱정이 되어

방문 앞으로 오니 안에서 보덕각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괜찮아질 것이니 걱정마십시오."

 

하지만 한참이나 지나도 신부가 나오지 않았다.

초조해진 사람들은 문을 부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침상에 누워 있는 신부를 본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름다운 보덕각시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더니 마침내 시신의 그것과 같이 되었다.

마랑의 아버지가 떨리는 손가락을 보덕각시의 코앞에 갖다 대 보니 숨을 쉬지 않는 것이 아닌가!

 

절세미인에게 장가를 가려다가 졸지에 상주喪主가 된 마랑은 기가 막혔지만 도리가 없었다.

혼인식도 마치지 않았지만 마씨 일가는 보덕각시를 자기네 집안 사람으로 인정하고 후하게 장례를 치렀다.

겨우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보덕각시의 어머니를 찾았지만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해서 보덕각시 혼인 소동이 가라앉을 무렵에 노스님 한 사람이

돌로 된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 보덕각시의 무덤을 찾았다.

 

소문을 듣고 달려 간 마랑이 보는 앞에서 무덤을 파서 관을 연 노스님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쇄골을 지팡이의 고리에 걸더니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얼이 빠진 사람들의 귓가에는 "성인이 너희들이 불쌍히 여겨

불법을 전해 준 것이니라"라는 소리만 맴돌 뿐이었다.

 

그러자 비로소 사람들은 보덕각시가 실은 <<보문품>>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모두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로 보건대 보덕각시는 20세 전후의 절세미인이다.

그런데 남종진 화백의 마랑부관음도에는

후덕한 중년부인이 그려져 있지 절세미인은 어디에도 없다.

 

얼굴 생김새도 그렇지만 목에는 나이가 들었다는 상징인 주름이 세 줄이나 있다.

그래서 필자가 남화백에게 항의 아닌 항의를 하니 목에 그려진 것은 주름이 아니라 삼도三道라고 한다.

 

삼도는 견도(見道 도를 봄), 수도(修道 도를 닦음), 무학도(無學道 배울도가 없음)의

세가지, 혹은 번뇌도煩惱道, 업도業道, 고도苦道의 세 가지를 의미한다.

 

마랑부관음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이 다양한 불교적 의미가 들어있다.

첫째는 무상無常이다. 건강하던 보덕각시의 몸이

빠르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인생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무상을 알아차린 마랑은 스님이 되어 열심히 수행했는데, 신라 땅에 들어온

그는 금강산 만폭동 근처에 있는 한 굴에서 그만 입적(入寂 스님의 죽음)하고 말았다.

 

둘째는 윤회輪廻다. 고려시대 의종 때 희정이라는 법명의 스님이 있었다.

금강산 장안사長安寺 송라암松蘿蓭에서 관세음보살 친견을 위한 3년 기도를 마친

그는 꿈에 나타난 노파의 조언에 따라 오대산에 들어가 혜명방의 딸인 보덕각시와 결혼했다.

 

엉겹결에 데릴사위 노릇을 하던 스님은 간신히 처가에서 탈출해 예전에 공부하던 송라암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희정 스님은 만폭동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보덕각시를 보고

소리치니 보덕각시는 새가 되어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새를 따라간 희정 스님은 폭포 뒤에 있는 한 굴로 들어섰다.

굴이 친근한 느낌이 든 스님이 이곳저곳을 파 보니 경전과 발우가 나왔다.

 

그제야 희정 스님은 자신의 전생이 마랑이었으며 관세음보살과 깊은 인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대로 굴에 눌러 앉아 치열하게 수행한 희정 스님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셋째는 파상破相이다. 파상이란 '형상에 대한 집착을 깨뜨림'이다.

신랑 후보자들은 보덕각시의 아름다은 용모에 대해 집착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긴 경전을 외우는 시합에 참가했다.

 

2차 시험에 출제된 <<금강경>>의 내용 가운데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이란 구절이 있다.

 

'모든 형상들은 다 허망하다'라는 의미인 이 구절은

형상에 대한 집착을 끊으라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과연 50명의 신랑 후보자들 가운데 그 의미를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을까?

사람들은 순식간에 시신으로 변한 보덕각시를 보고나서

'범소유상 개시허망'을 절감했지만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노승이 나타나 보덕각시의 무덤을 열고 금으로 된 쇄골을

가지고 가는 것을 보고서야 겉으로 드러난 것이 모두가 아님을 알게 된다.

형상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는 일은 이렇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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