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스님 좋은 말씀

들소폭포

갓바위 2021. 10. 1. 08:18

 

인디언 블랙풋족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인간사회에 있어 신화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종교만큼 교리를 깔고 있지는 않지만,

자연계의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공존하는 지혜와 덕을 설파하고 있다.

 

불가피한 살생 같은 행위일지라도 인간에게는

심리적인 부담을 안게 하고, 인과의 물음을 던진다.

 

태고의 수렵사회의 경우, 인간과 동물 사이에 유대관계의 설정이라는

내포된 의미를 읽는 일은 동물과 인간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효율적으로 조율해 가는 지혜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즉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생존의 경우라면,

이 살생과 희생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식이다.

 

삶의 능동이 있으면 수동이 있고 창조가 있으면 소멸이 따르는

보다 큰 의미의 우주적인 질서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 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결코 충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삶을 제공해 준 상대에 대한 행복한 생각이 희생물을 안녕에 들도록 유도한다.

바로 자연의 화합공생의 법칙에 대한 절대적 순응이다.

 

여기엔 상대에 대한 우월의식이 자리하지 않는다. 필요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희생을 얻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행위 자체가 거룩한 신비의 이불이다.

고대의 신화자체가 몸과 마음을 조화시킬 목적으로 빚어졌음을 기억하라.

 

블랙풋족은 들소를 절벽으로 유인하여 절벽 밑으로 떨어뜨림으로써 겨울 양식을 준비했다.

어느 겨울은 들소들이 절벽 끝에서 돌아서 버림으로써 겨울을 보낼 일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루는 인디언 처녀 한 명이 아침 일찍 일어나 물을 길러 갔다가

무심코 절벽 위를 쳐다보았더니 들소 떼가 그곳에 있었다.

처녀는 무심결에 이런 말을 뱉고 말았다.

 

"그대들이 절벽에서 떨어져 주기만 한다면 내가 그대 중 하나에게 시집이라도 가겠다만...."

그런데 순간 들소 떼가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중에

샤먼 노릇을 하는 늙은 들소 한 마리가 처녀에게 걸어와 말했다.

 

"이제 나하고 가자." 처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안돼!" 그러자 들소가 처녀를 나무랐다.

"가야 한다. 우리는 약속을 했다. 우리는 약속을 지켰다. 우리 식구를 보아라.

저렇게 피를 흘리며 죽어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나하고 가야한다."

 

처녀의 식구들이 아무리 찾아봐도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땅의 발자국을 잘 읽는 인디언답게 아버지가 딸을 찾아 나섰다.

"들소와 함께 갔구나. 내 딸을 찾아 와야겠다."

 

아버지는 모카신을 신고 활과 화살을 챙겨 평원으로 나섰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잠시 지친 다리를 쉬고 있는데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서 딸이 들소들과 함께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는 까치에게 자신이 가까이 와 있음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고,

까치는 들소 무리 속에서 옷을 손질하고 있는 처녀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딸은 혹 발각이라도 되면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자신이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잠에서 깨어난 들소가 물을 길어 오라는 일을 시켜서

여울로 나가 보니 그곳에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바로 도망가자고 했지만 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위험하니까 수습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고는 들소 무리를 향해 돌아갔다.

 

그러나 또 다른 인간의 냄새를 맡은 들소들이 일시에 몰려가 인디언을 짓밟아 버렸다

처녀는 슬피 울었다. 그러자 들소가 물었다.

"울기는 왜 우는가?" 처녀가 말했다.

 

"죽은 사람이 우리 아버지니까 울지." 그러자 들소들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는 어쩌겠나. 절벽에 떨어져 죽은 들소들은 우리 자식들이자 아내이고 부모들이다.

그런데 그대는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슬퍼하는구나."

 

그러면서도 들소는 처녀가 애처로워 다시 말을 붙였다.

"좋다. 그대가 아버지를 살려 보아라. 그러면 돌려보내 주마."

처녀는 까치에게 아버지의 살 한각이라도 찾아달라했다.

 

까치가 물어온 것은 척추 한 조각이었다.

처녀가 뼈 조각을 땅에 묻고 담요를 덮은 다음에

생명을 소생시키는 노래를 불렀더니 그 속에서 사람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아직 숨까지는 쉬질 못해서 다시 노래를 더 불렀더니 완전히 살아나는 것이었다.

 

들소들이 놀라면서 처녀에게 말했다.

"왜 우리는 이렇게 해 주지 않았는가. 우리가 들소 춤을 가르쳐줄테니 우리 일족이 죽거든

그 들소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다오. 그러면 우리가 다시 살아날 것이오."

 

신화에서는 노래와 춤이 삶을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게 하는 의례이다.

이 새로운 차원에서 생명은 진화하며 다른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 들어간 곳을 통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상호 교환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 신성한 그들의 대지에서 백인들이 벌인 사람과 들소 떼에 대한 대학살을 자연은 기억할 것이다.

인디언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부른다 한다.

나의 상대역으로서의 존재라는 뜻이다.

보경 스님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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