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우리가 진정 보고 듣는 것은 무엇인가요]
산사에 사는 최상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곡 가운데 앉아서도 잠시 다른 생각에 미치게 되면 물소리가 들리지 않게 됩니다.
아니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이는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하더라도, 마음의 초점이 다른 곳에 향해 있으면,
이미 그 꽃은 나의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게 되지요.
그래서 어떤 이는 봄을 찾아서 온 산을 짚신이 다 헤지도록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야 울타리에 매화꽃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는
시구(詩句)도 전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거실에 있는 시계는 하루 종일 똑딱똑딱 쉬지 않고 소리 내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계 소리가 항상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응접실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다른 생각이나 다른 일에 마음을 뺏겨 있는 동안에는
그런 시계 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의식조차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물과 배경을 함께 찍는 경우, 인물에 초점을 맞추면 배경이 희미하게 나오지요.
그리고 배경에 초점을 맞추면 인물은 희미하게 나옵니다.
우리의 시선도 이와 같습니다. 비록 눈앞을 주시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가에 따라 잘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눈이 보는 게 아니고, 귀가 듣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과 귀는 다만 그 매개체일 따름입니다.
진정으로 보고 듣는 성품은 따로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니, 귀는 듣기만 하고 눈은 보기만 하는 줄 아는데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니 무슨 화두 같은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몇 해 전 중국의 몇몇 아이들이 귀로 글을 읽는다는
소식이 일간 신문의 해외토픽 란을 장식한 적이 있습니다.
눈은 철저히 가리고 귀에 책이나 글을 갖다 대어도 그 글을 바로 읽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기이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충분한 가능한 일이지요.
보는 성품과 듣는 성품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월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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