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제의 연장이요 내일은 오늘의 상속이다. 전생은 금생의 과거요
내생은 금생의 미래이다.
사람들은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전생을 생각하고 내생을 바라보며 금생을 살아가는 이는 흔치 않다.
왜 어제는 돌아볼 줄 알면서 전생은 묵살하고,
내일은 기약하면서도 내생은 잊고 사는 것일까?
그것은 전생과 내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요,
지금 이 순간에 너무나 집착하며 살 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는 이상
전생 ·금생 내생의 삼세윤회(三世輪廻)는 반드시 있다.
왜냐하면 삼세윤회는 인(因)·연(緣)·업(業)·과(果)의
넷으로 구성된 필연적 연 기(緣起)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인연업과(因緣業果) . '인'은 씨앗(因子)이요 '연'은 연지(緣地), 곧 씨앗이 뿌려지는 밭이며,
'업'은 밭에 뿌린 씨앗이 결실을 볼 때까지 가꾸는 행위이다. 이렇게 인과 연과 업이 모이면
결과는 자연 '성 (成)'일 수 밖에... 씨가 좋고 밭이 좋고 농업을 잘 지었으면 복을 많이 받을 것이고,
나쁜 씨를 나쁜 밭에 뿌리고 가꾸는 일을 게을리 했다면 수확이 나쁜 것은 정한 이치이다.
심은 대로 거두고 지 은 대로 받는 것 이니,
선인선과(善因善果)악인악과(惡因惡果), 이것이 사바세계의 생리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 '있다'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인과응보와
윤회를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물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자라나고 있고 모든 것은
모르는 사이에 무르익어가고 있다. 삼세의 인연 또한 시간과 공간의 파장(波長)으로서,
전생에 하던 일과 생각했던 일을 금 생에도 하게 되고, 금생에 하는 일과 생각하는 일은
내생으로 연장 확대되어 간다. 인연따라 생겨나고 인연따라 사라지는
종연생 종연멸(從緣生 從緣滅)의 법칙! 이는 만고불변의 철칙 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업과윤회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가?
아니다. 이 몸을 자동차에 비한다면 이 몸을 움직이는 운전수가 있다.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운전수,이 몸을 끌고다니는 '참 나'가 있는 것이다.
이 '참나'를 분명히 찾으면 윤 회와 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동차가 달라져도 주인은 그대로이듯, 우리는 업을 따라 차종 만 바꿀 뿐이다.
궂은 업 을 지었으면 궂은 차를 타고 좋은 업을 지었으면 좋은 차를 타기 마련이다.
그것도 잠시동안을‥‥그런데도 사람들은 지은 업은 돌아보지 않고 좋은 차만을 고집한다.
나라고 하여 궂은 차를 타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문제는 더욱 커진다.
기꺼이 받으면 업이 저 절로 녹아내 릴 수 있는데도
억지 탈바꿈을 추구하다가 더욱 궂은 업을 짓게 되고 만다.
이 렇게 하는 이상 자유와 행복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시작도 끝도 없는 윤회의 길 속에서
한없는 괴로움을 짊어지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윤회와 인과를 철저히 믿고,
내가 지은 업을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로 살아서 한시바삐 고통을 벗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아가 자동차가 아닌 운전수, 참된 나의 주인공을 찾고 윤회와 업의 굴레를
해탈하여 마음대로 오고 (如來) 마음대로 가는(善逝) 생사불이(生死不二)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일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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