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스님 좋은 말씀

큰스님 되거들랑....

갓바위 2022. 6. 17. 09:29

 

겨울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나보다.

마른 나뭇가지 틈새로 '윙윙'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유난히 스산스럽다.

이 스산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이맘때쯤이면

귀하디귀한 쌀을 송편을 만들어 먹는 일이 관례처럼 되어버렸다.

 

대중방에 모여 송편을 빚으면서 나누는 스님들의 얘깃소리

또한 겨울처럼 깊어져 화기애애함이 방안에 넘치고 있었다.

눈보다 뽀얀 쌀가루 속에 두 손을 쑤욱 넎고 임행자는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차가운 감촉이 '싸' 하니 가슴가지 전해오는 듯했다.

그이는 그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손을 뺐을 때 분가루처럼 뽀얗게 손의 결을 따라 묻어나오는 가루를

'탁탁' 털 때, 여기 저기로 떡가루가 흩날리는 것 또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동글동글한 송편이 어느새 한 소반 가득 빚어졌다.

대추, 밤, 콩, 깨를 넣고 만든 송편 중, 그이는 깨를 넣은 것이 제일 좋았다.

해서 그이는 깨만 넣어서 약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나중에 혼자 알아보고 잘 골라 먹을 참이었다.

 

벌써 솔향기 그윽한 송편을 먹은 것처럼 입에는 침이 잔뜩 고였다.

떡을 앉히고 들어온 원주스님이 추운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이가 빚어놓은 송편을 보고 한마디했다.

 

"어이, 임행자, 자고로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고 했는데,

너 송편 빚은 것을 보니 예쁜 딸 낳긴 틀렸다.

너처럼 못생긴 딸을 낳으면 시집도 못 보내고 어쩌냐?

너, 장가 안 가고 스님 되길 참 잘했다."

 

"치이, 그래도 스님 것보단 예뻐요. 스님은 꼭 메주처럼 만들었으면서......"

스님들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차가운 도량까지 여울져갔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구를 찾아 예쁜이도 금순이도 담봇짐을 쌓다네."

'~쌓다네' 부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표정을 못 감추고 양볼리 발개진채,

그이는 몸을 배배 꼬며 자리에 앉았다.

"야, 임행자. 노래솜씨 많이 늘었다.

굴뚝 뒤에서 몰래 연습한 보람이 있는데? 옛다, 그런 의미에서 송편 하나 먹어라."

 

잘 빚어진 송편만 골라 한 접시 가득 담아 부처님 전에 올리고

내려온 것에서 웬일인지 원주스님이 하나를 냉큼 집어 주었다.

이상하게도 아직가지 송편이 따뜻했다.

송편을 받아 '후후' 두어 번 불고는 한 입에 덥석 물었다.

 

'이 속에 들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설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콩은 아니겠지?'

송편을 두어 번 씹다가 그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퉤퉤 뱉어냈다.

고춧가루하고 범벅이 된 송편이 튀어나왔다.

스님들의 터져나온 웃음 소리가 도량을 넘어 산문까지 넘실대며 퍼져나갔다.

'어디 두고 보자. 나를 놀리면 어떻게 되나!'

반죽한 가루를 몰래 들고 후원에 나온 그이는 고춧가루, 소금을 넣어서

한 여남은 개 만들고는, 설설 김이 오르는 찜통 속, 다른 송편 사이로 여기저기 넣어 두었다.

자신을 놀린 대가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참이었다.

 

시치미를 뚝 떼고 방에 들어온 그이를 보고 원주스님이 또 한마디했다.

"어이, 화장실 갔다가 손은 씻고 왔냐?"

그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후에 쓴맛을 볼 원주스님이기에 지금은 참기로 했다.

 

송편이 거의 다 빚어지고 여기저기 자리를 거두느라 수런거렸다.

임행자의 마음도 수런거렸다. 고춧가루랑 소금을 넣은 송편을 먹었들 때,

원주스님의 얼굴이 과연 어떨지 고소해 미칠 지경이었다.

 

찜통에서 나온 송편에 참기름이 발라지고 접시에 담겨 날라져 왔다.

여러 개의 손들이 접시 사이로 왔다갔다했다.

임행자도 조심스레 하나씩 집어먹으면서 원주스님의 눈치를 살폈다.

 

부지런히 송편을 먹는 원주스님의 입은 계속 맛있다는 듯 우물거렸다.

토옹 맵고, 짠맛의 송편을 먹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불안의 싹이 그의 마음에서 쑥 일어났다. "임행자야!"

 

아니나다를까 큰스님이 부르는 소리가 그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방법이 없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미적미적거리며 큰스님 방으로 건너갔다.

"이 송편 좀 먹어 보아라. 맛이 유난히 좋구나."

 

동글동글한 송편이 세 개쯤 담긴 접시를 내밀며 큰스님께서 다정히 말씀하셨다.

"뱉어내지 말고 꼭꼭 십어 삼켜라.

어찌나 맛있던지 혼자 먹기 아까워 너를 불렀으니 다 먹어야 한다.

혹 목멜지 모르니 옆의 물이랑 함께 먹어라."

 

임행자는 큰스님의 눈치를 살피며 떨리는 손으로 송편을 하나 집어들었다.

입에 넣고 한 입을 베어 물자. 눈에 매운 눈물이 고였다.

"그래, 맛이 괜찮지? 꼭꼭 씹어 삼켜라." "네에-."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하자마자 재채기가 튀어나왔다.

입에서 나오는 파편과 함께 눈물 콧물이 뒤다라 나왔다.

"자자. 저 물이랑 마시래두, 얹히겠다."

 

큰스님의 다정한 말이 왜 그리도 능글맞은지, 정말 처음으로

그이는 큰스님도, 원주스님도 다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고보자, 내가 큰스님 되거들랑......'

영담스님의 동승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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