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며칠째인지도 모른다.
해우소에 가서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힘을 주지만 도대체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뱃속이 더부룩한 것이 마른 방귀만 뿡뿡 나올 뿐, 그 동안 뱃속으로 들어가고
필요없는 것들이 나놀 법도 한데 어찌된 일인지 뱃속으로 들어가기만 할 뿐,
밖으로 나오는 것은 며칠째 마음먹은 대로 되어주질 않았다.
추운 해우소에서 엉덩이가 시릴 정도로 한참을 노력해 보았지만 성과가 없었다.
해우소에서 나온 임행자는 배를 슬슬 문지르며
방으로 가다가 방향을 바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골방 쪽으로 걸어갔다.
골방에는 짚을 펴놓고는 그 위에 지난번 딴 감들을 소복소복 얹어 놓았다.
나무에서 막 딴 감은 떫고 입에 엉겨붙어서 무슨 맛인지도 몰랐는데,
며칠 사이 그 감들이 몰랑몰랑한 연시로 변해가고 잇었다.
그 중에는 이미 달콤한 연시로 변해버린 것들고 몇 개 있었다.
그이는 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 골방을 드나들며 연시로 변한 감들을 몰래
하나씩 곶감 빼먹듯 빼먹는 일에 벌써 며칠째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겨우내 특별한 간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는
산중 절에서는 연시가 스님들의 아주 귀한 간식거리였다.
대중스님들의 그 귀한 간식거리를 임행자 혼자 몰래
골방에 숨어들며 하나씩 하나씩 요절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골방으로 숨어 들어간 그이는
감들이 물렁해지기가 무섭게 슬쩍 해치우곤 했다.
연시가 된 감의 그 몰랑한 감촉과 달콤한 맛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꼭 오늘 하루 한 개만 먹고 이제 그만 먹어야지 한 것이 벌써 며칠째인지도 모른다.
감을 몰래 먹으러 골방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벌써 보름 가까이
이상하게도 해우소에서 볼일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얼굴에는 주먹 만한 뾰류지가 불거져 나오고 뱃속은 꾸르릉 천둥소리를 내며 부풀어 올랐다.
끅끅 마른 트림을 하던 그이는 더부룩해진 배를 슬슬 문지르며 걸어가다 큰스님과 맞닥뜨렸다.
"이놈, 뭘 그렇게 궁시렁거리느냐?"
"큰스님, 저 배가 이상해요. 해우소엘 가도 볼일은 안 나오고, 배가 부글부글 끓어올라요."
"그건 니 뱃속에 탐심이 가득 차서 나오는 증세이니 욕심만 버리면 낫는 병이니라."
임행자와 무슨 법거래를 하듯 큰스님은 알 수 없는 한마디 말만을 남기고
찬바람을 휭 하니 일으키며 돌아서서 가버리셨다. 그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이, 배 아프다는데 무슨 욕심을 버리라고 하시는 게야. 에라, 모르겠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고 했는데....... 게다가 많이 먹어야 똥도 잘 나올 게 아닌가."
그의 발길은 자연스레 골방으로 옮겨졌다.
골방문을 열자 들큰한 단내가 정겹게 다가왔다.
보아하니 저쪽 구석자리에 불그스레한 빛을 띠고 있는 감이 몰랑해진 듯싶었다.
그이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다른 감들을 밟을 세라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옮겼다.
손을 내밀어 몰랑한 감의 감촉을 막 느끼려 할 즈음,
벌컥 골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둑이야, 저 도둑놈 잠아라."
너무 놀란 임행자는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문을 벌컥 열고 소리 친 사람은 바로 큰스님이셨다.
큰스님의 서슬이 하도 시 퍼런 바람에 그이는 아무 소리도 못 하고
큰스님께 뒷덜미를 잡혀 골방에서 끌려나왔다.
큰스님의 도둑이라는 소리에 놀라 다 익은 감 위에 주질러 앉는 바람에
터진 감이 그의 엉덩이에 꼭 뭐처럼 질펀하니 묻어 있는 모양을 보고
모여 서 있던 대중스님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젖혔다.
"네 이놈, 세상의 모든 화근은 욕심에서 생기느니라.
해서 아까 욕심을 버리라 했거늘,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또다시 골방으로 숨어들어?
대중스님들 겨울 간식거리로 사용 될 것을
네가 어려움도 없이 하나씩 하나씩 요절을 내? 이 버르낭머리없는 놈아?
게다가 제놈 똥구멍이 막혀서 똥이 안 나오는 것은 다 식탐에서 비롯된 것이거늘,
부처님 밥 먹는 놈이 욕심 부릴 게 없어서 하필이면 추접스럽게 먹는 것에 욕심을 부리느냐?
어쨌거나 똥 못 누는 병은 욕심부려서 얻은 병이라 밉기는 하지만
자비문중에서 치료도 안 해주고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
누가 가서 꼬챙이 하나 가져오너라. 저놈 엉덩이를 뚫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빙 둘러서서 웃음을 참지 못해 키득거리는 대중스님들 앞에서
임행자는 정말 엉덩이를 까고 하늘 높이 엉덩이를 치켜올리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상황을 모면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이 자리에서 죽어버려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세음보살님. 차라리 이런 모멸을 당하느니 이 자리에서 죽게 해주십시오. 제발 관세음보살님......'
이런 그의 기도를 관세음보살님이 들었는지 말았는지 임행자는
저쪽에서 커다란 꼬챙이를 하나를 들고 웃으며 달려오는 원주스님의
생생한 모습에 이제는 아무 생각도 없이 힘없이 눈을 스르르 감고 말았다.
영담스님의 동승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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