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배의 사자

갓바위 2022. 7. 10. 09:15

석존께서 사위성의 기원정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어느 해, 기근(飢饉)이 닥쳐와 백성들은 먹을 것을 구하여 여러 나라로 이산했을 때,

석가모니의 일행도 먹을 것을 얻을 길이 없어 석가모니께서도 가끔 식사를 얻지 못할 때가 있었다.

 

현자(賢者) 아난(阿難)이 생각하였다.

『세존께서 만일 다른 나라에 떠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날에는,

모처럼 평안히 석가모니를 따라 도를 닦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모두들 이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다.』

 

이에 아난은 사위국왕 바세나디에게 가서 사정을 말하고 승단(僧團)의 구제를 청하였다.

왕은 혼연히 석가모니와 그 제자들을 위하여, 석 달 동안 공양을 하여

곤란을 겪지 않게끔, 또한 병자에게는 의약을 베풀어 구제해 주었다.

 

이 모두가 아난의 공이라고 하여 일동은 그를 칭찬하였다.

일동의 찬사를 들으신 석가모니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아난이 좋은 꾀를 써서 시의(時宜)를 얻은 일을 한 것은 이번 뿐이 아니다.

그의 과거세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하고, 다음과 같은 옛날 이야기를 하시었다.

옛날, 바라나시국의 덕이 높은 왕 범탈을 현자의 이름을 사방에 떨치고 있었다.

한때, 기근이 그 나라를 엄습하여 곡식 값은 오르고 백성은 굶어 죽으며,

길거리에는 거지가 들끓었다. 왕은 이 광경을 보고 창고를 열어 보시를 했으므로,

그렇게도 크던 왕의 창고도 거의 바닥이 나게 되었다.

 

그러나 가뭄은 더욱 계속되어 아무리 벼를 심어도 결실을 못하여,

거지는 나날이 늘어만 가고 굶어 죽는 백성은 수를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여러 신하들은 이마를 마주 대고 협의를 하였다.

 

아무리 굶어죽는 사람이 많아도 이 이상 더 보시를 계속 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

왕께 아뢰어 보시를 중지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왕 앞에 그 사정을 아뢰었다.

『이런 형편이오니 보시는 일단 중지하고,

다시 충분한 분비가 된 연후에 다시 구제를 실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는 보시를 중지할 수는 없소. 보시는 나의 본래의 소원이기도 하지만,

또한 먹을 것이 없어서 찾아와 달라는 것을 거절한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짓이오.

오지 않을 때까지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보시를 하겠소.』

 

왕의 단호한 말에 여러 신하들도 궁여지책으로 한 꾀를 생각해 내었다.

그것은 오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왕에게 보시를 청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

 

엄중한 포고가 거리거리에 나붙었다.

사방에서 모여든 굶주린 백성들은 이 포고를 보고 모두 당황하였다.

왕에게 가서 구걸을 하려해도 전달을 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와 처자는 굶어서 운다.

왕은 자비로우신 분이다.

이런 포고는 신하들의 장난이지 왕의 본의는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신하들의 무자비함을 원망하였다.

 

그 때에 한 바라문의 선비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굶으며 며칠을 지냈다.

걸식을 해서 먹을 것을 구하였으나, 얻지를 못하여 처자와 함께 뼈만 남게 되었다.

어느 때, 아내가 말하였다.

 

『당신은 왜 왕께 청해보지 않습니까?

왕께서는 말씀드리기만 하면 꼭 들어주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니야, 포고가 나와 왕에게 청원하는 자는 죽음을 당한다.

왕은 지금에는 아무도 만나 주지를 않는다.

다만, 먼 나라에서 온 사자만은 할 수 없이 만나 준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나는 먼 나라에서 온 사람입니다」하고 만나기를 청해 보십시오.

왕께 만나 뵙기만 하면, 소원은 틀림없이 들어 줄 것입니다.』

 

바라문은 아내의 말대로 옷을 차려 입고,

성문 앞에 서서 먼 나라의 사자가 왕께 뵙고 싶다고 신청을 하였다.

왕은 그를 접견하였다. 『어디로부터 온 사자이냐?』

 

『대왕이시여, 용서하십시오. 저는 제 배의 사자로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재물을 탐내어 사람의 목숨을 해치고 재물을 빼앗는

자들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 것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배의 사자일 뿐입니다. 국왕님, 관대하신 마음으로 도와주십시오.

 

기갈(飢渴) 때문에 고통 하면서도 배를 채울 수 없는 것만큼 절실한 고통은 없습니다.

제불도, 연각(緣覺)도, 성문(聞)도 이런 현자들까지도 지금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저도 실로 이 배로부터의 사자입니다. 대왕님, 어서 우리들의 기갈을 구해 주십시오.』

 

왕은 이 꾀 있는 배의 사자를 가엾이 여겨 붉은 소 한 마리와 송아지를 함께 보시해 주었다.

이 바라문이야말로 지금의 아난이며, 범탈왕은 바세나디왕의 전생이다.

관련 경전 : 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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