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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추억 같은…울진 등기산 팽나무

갓바위 2023. 5. 6. 22:12

첫사랑의 추억 같은…울진 등기산 팽나무

 

울진 후포항厚浦港의 또 다른 이름 ‘휘라포徽羅浦'

 

후포항.

 

경북 울진의 남쪽 관문이자 ‘국제마리나항’으로 급부상하는 후포항厚浦港의 또

다른 이름은 ‘휘라포徽羅浦’이다. ‘비단처럼 빛나는 포구’라는 뜻이다.

전통 어로기술인 ‘후리그물질’이 잘 발달한 포구의 특성을 살려

‘후리포’라고도 부른다. 한 번쯤 후포항을 와 본 사람은 안다.

 

왜 후포항이 휘라포라는 이름을 지녔는지를. 고려 말 뛰어난 학자이자

문학가인 안축安軸(1282~1348) 선생은 여말선초 격동의 정치적

변혁기에 영동의 최남단 울진 후포를 찾아 등기산 정상에

누각을 세우고 ‘망사정望槎亭’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잔잔하게 이는 물결에 미끄러지는 떼배를 바라보는 정자’.

머릿속에 그림 한 점이 또렷하게 그려진다.

 ‘더없이 높고 푸른 하늘엔 흰 구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혹은 한 데 엉켜 흐르고

하늘과 맞닿은 천근天根(수평선)은 눈에 잡힐 듯 아물거리고 갈매기는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청람빛 바다 위를 빙 돈다.

 

청람빛 바다에는 떼배 한 척 갈매기를 쫓아 일렁거린다’

정치적 격랑기의 혼란 속에서 동해 끝단 울진 휘라포 바다를 떠다니는

떼배를 만난 안축 선생은 평생 만져보지 못한 ‘단사표음簞食瓢飮’의

세상을 만나고 ‘뒤얽힌 뿌리와 엉클어진 마디’처럼 혼란스런

‘반근착절盤根錯節’의 어지러운 세상을 바다에 던졌을 것이다.

 

조선조 대학자인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망사정에서 깎아지른

해안절벽 밑으로 가없이 펼쳐진 잔잔한 바다를 보며 ‘망사정 위는 신선의 집인데/

망사정 아래는 어룡의 물결이네/은하수 한줄기 넓은 바다에 닿아 있고/

저 멀리 가을바람 따라 견우성에 이른다네’라고 노래했다.

 

여말선초 문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던 망사정은

조선 중기에 중건되었다가 400여 년이 지난 2010년에 복원됐다.

 등기산燈旗山은 고기잡이 어부들에게 지표를 알려주기 위해 낮 동안에는

흰 깃발을 꽂고 밤에는 봉화를 피웠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등기산 팽나무.

 

등기산 팽나무 그늘에 서면 당신은 ‘첫사랑의 주인공’

망사정과 함께 휘라포 바다를 한눈에 조망하는

명소로 등기산 정상에 뿌리내린 팽나무 군락을 빼놓을 수 없다.

좌우로 가지를 뻗쳐 우람하면서도 단아한 모습의 팽나무 군락은

‘영화 속 첫사랑의 장소’처럼 두 팔 벌려 코발트빛 휘라포 바다를 안고 있다.

 

무성한 잎사귀를 단 팽나무 그늘의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아련한 첫사랑의 향내’가 파도처럼 왈칵 가슴으로 달려온다.

바닷바람과 어울려 그림처럼 서 있는 팽나무 그늘이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단아하다. 팽나무 그늘 벤치에 앉으면 누구나 ‘설레는 첫사랑의 주인공’이 된다.

 

마침 등기산 공원을 찾은 마흔 줄의 중년여성들이 팽나무

그늘에 놓인 벤치에 앉아 휘라포 앞바다를 떠가는 배를 바라다본다.

맑고 잔잔한 바다가 수 천 년을 어루만져 빚은 등기산은

해수와 바닷바람이 키운 해양 수종樹種의 보고이다.

 

수령 300년이 넘는 팽나무 군락과 경북 동해안 지방에서는

좀체 만나기 어려운 말채나무, 참빗살나무, 당조팝나무,

푼지나무가 사철 푸른 잎사귀를 매달고 바닷바람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