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잘못 알고 있는 불자
어머니의 행복은 아기에게 젓을 물릴 때이다.
세상의 모든 태생(胎)-생명은 자기 분신에게 젓을 물릴 때 가장 행복하다 한다.
손자의 입에 오물오물 먹을 것을 먹여줄 때 할아버지는 행복함을 느낀다.
보석보다 귀하고 천지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천륜이 주는 행복이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 새끼 가족을 지킨다.
이 아침 텅 빈 하늘을 바라보며 허공을 향해 소리친다.
하느님도 - 부처님도- 다 소용없다.
인간이 인간만을 구제할 수 있고 인간의
지성만이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운명도 숙명도 우둔한 인간이 저지르는 무지에서 오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자기밖에 모르고 우둔하고 우치하고 무지하면 그는 짐승보다
못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탈을 쓴 야차다.
불교를 잘못 알고 절에 다니는 신도가 80%이다.
자기 가족 복 비는 것 밖에 모르는 불자가 거의 대부분이다.
자기 가족의 출세와 인기 부자 명예를 얻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신자가 대부분이다.
절, 부처님이 계시는 곳은 복을 빌고 팔자를 고치고 운명을 고치는 곳이 아니다.
절은 불공을 하는 곳이 아니라. 불공을 가르치는 곳이다.
탁자 위의 부처님은 불공을 받으려고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니다.
밖에 있는 만유중생인 사람을 섬기고 공양을 베풀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표본으로 계시는 것이다.
탁자 위의 부처님은 모든 존재가 부처라는 것을
가르쳐 증명하기 위해 앉아 계시는 것이다.
자기 복만 빌고. 자신의 가족의 출세만 비는 기도는-
불교를 잘 모르는 불자요, 예수님을 잘 모르는 신자다.
성인의 가르침을 배워서 모른 사람을 가르처 주고.
우둔한 사람을 일깨워 주는 것이 바른 종교관이다..
틀에 밝힌 자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자기 성찰이-
바른 기도요. 바른 염불이요. 바른 수행이다.
부처님은 아무것도 구해 줄 수가 없다.
부처님은 중생에게 밝은 지혜를 깨닫게 하시어
어둠 속에서 밝은 길로 빠저 나오시게 도와 주실뿐이다.
직선밖에 없는 일차원의 일상들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중생의 세계다.
앞과 뒤만 있는 세계. 양보하면 나만 손해라는 중생의 세계.
밀리면 패하고. 밀리면 죽는다는 강박관념에서 사는 세계다.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 그 길은 부처님의 가르침 "자리이타"의 길이다.
옆으로 쌀짝" 조금만 비켜주면 앞으로 돌진하는 상대의 자동차를
지나가게 하면. 상대도 살고. 자신도 살아서 무사히 그 길을 가고 올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자리이타의 안목을 얻게 하여 주시는
부처님의 법, 그 법이 우리들을 구제하여 주시는 구원의 도움인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 「자리이타」, 이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마음이 이타" 정신이다.
할아버지가 손주의 입에 먹을 것을 주며
기뻐하는 마음이 부처님의 자리이타 불공"정신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무지의 마음을 열어주는 깨어있는 불자가 돼야 한다.
질주하는 자동차를 쌀짝 양보하여 주는 마음이 무지한
인간의 심성을 치료해 주는 "불공보약"이다.
정해진 팔자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보리심이다.
기도란 무엇인가.? 자기를 참회하여 자신의 마음을 제 정립하고
새로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려는 발 보리심의 발로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메꾸는 기회가 기도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때에 따라 멈추기도 하고. 나아가기도 하는 것을 말한다.
좋은 마음을 먹을 수도 있고. 나쁜 마음을 먹을수도 있다는 말이 "색불이공"이다.
똑같은 눈을 가지고 남의 허물을 볼 수도 있고.
또 다른 그의 장점과 좋은점도 볼수 있는 것이 "공불이색"이다.
치유는 원망만으로 치유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역명적인 일은
무지와 우치에서 깨어나게 하는 사회운동이다.
"자리이타"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불공운동이다.
자신의 성숙한 지성을 위해서 자신을
가다듬는 실질적인 공부 『마음 다스림』이다
.-무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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