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 행복한가

문득 어느새 삶의 하류에 다다른 자신을 보는 일

갓바위 2024. 2. 27. 09:33

 

 

문득 어느새 삶의 하류에 다다른 자신을 보는 일

 

‘방심 상태가 되기 쉬운 인간을 가장 명상적인 상태로 만들고 그를 일으켜서 그의

발을 움직이게 해보라. 그 지방에 물이 있는 한, 반드시 물을 향해 걸을 것이다. 

명상과 물은 영원히 인연을 맺을 것이다.’

 

독서 노트를 뒤적이다 오래전 옮겨 적은 글귀에 눈이 멎었습니다.

허먼 멜빌의 <백경>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생각해 보니 방심 상태가

되기 쉬운 정도가 아닌, 늘 방심 상태로 살아가면서도

강을 오래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그것도 지척에 두고서 말입니다.

 

우리 마을은 전형적인 강마을입니다.

마을과 맞닿아 있는 암사동 선사 주거지에는 아득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움집터와 탄화된 도토리, 돌도끼와 이음낚시, 빗살무

늬토기가 출토돼 이 강가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이 이어져 왔음을 알게 하죠.

 

우리가 이곳에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강은 마을 사람들 곁을

다정하게 흘렀습니다. 강으로 나가는 길에 도로가 나 있었으나

차량 운행이 뜸해 쉽게 강으로 나갈 수 있었죠.

 

특히 여름날 저녁, 강바람을 쐬는 상쾌함은 비길 데가 없었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강가를 걸으며 동요를 부르고, 달맞이꽃이 피어나는 걸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반딧불이는 어둠을 가르며 쏘다녔고,

민물새우와 조개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강이 마을 사람들과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올림픽대로가

개통된 후부터입니다. 넓은 길 위로 밤낮 없이 차량의 질주가 이어졌고,

강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해 강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섰죠.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강으로 나갔습니다. 횡단보도를 몇 번 건너

굉음에 휩싸인 터널을 통과하니 눈앞에 한강이 펼쳐졌습니다.

마침 석양은 아차산 능선에 살포시 걸려 금세 또르르 굴러 내릴 것 같았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과 산, 노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강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강가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걷고 달리는 사람들, 편을 나눠 공을 차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백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모형 비행기를 띄워 올리는 사람도 있었죠.

 

변함없이 저들만의 세상을 펼치고 있는 갈대, 달맞이꽃, 망초 무더기,

그러나 물과 흙이 순하게 만나던 자리엔 콘크리트 옹벽이 쳐져 모래톱이

사라지고 다슬기 무리도 간 곳 없었습니다. 강에 이르면 늘 상류 쪽으로

향합니다.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물이 한강에 다다르듯, 태백의 품에서

태어나 예까지 흘러온 생명의 본원에 대한 그리움 때문입니다.

 

페달을 밟아 자전거가 더는 달릴 수 없는 곳에 멈춰 섰습니다.

비로소 콘크리트 옹벽이 끝난 물가에 한 무더기 창포가 싱그러웠습니다.

먼저 마을에서 살다간 아낙들은, 단오가 되면 이 창포를 베어 머리를 감고

남정네를 설레게 했을 게 아닌가요? 이제는 창포를 베러 오기는커녕 창포를

알아보는 이마저 드무니 창포와 사람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말 것 같습니다.

 

물과 시간으로 이루어진 강, 보르헤스의 정의입니다. 어제는 북한강 혹은 남한강

으로 흐르다 오늘은 한강으로 흐르는 물, 강은 수많은 골짜기의 지류를 받아들

이며 화해와 포용의 순리를 가르칩니다. 낮은 곳으로 겸손히 흘러 스치는 마을

마다 생명의 원천이 되죠. 이제 한강도 긴 여정을 마치고 바다에 닿을 것입니다.

 

문득 어느새 삶의 하류에 다다른 자신을 봅니다.

바위틈을 비집고 골짜기를 달음질쳐 한강에 이른 물처럼 우리 또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장애물에 부딪히며 예까지 흘러왔습니다.

두 갈래 길에서는 안타까워했고, 예고도 없이 폭포를 만나 곤두박질치기도 했죠.

 

깊이를 지닌 강만이 고요히 흐를 수 있는 법.

산촌에서 자라 강이 이루는 평면보다 능선이 이루는 곡선이 눈에 익었습니다.

당연히 강물처럼 한데 섞여 흐르지 못하고 정에 쪼일 모서리만 잔뜩 키웠습니다.

가당찮게도 역류를 꿈꿨기에 삶은 아직도 뒤뚱거립니다. 고요와는 거리가 먼,

바람 잘 날 없는 한 그루 미루나무처럼. 나는 언제쯤 저 강물처럼

고요한 깊이를 지니게 되려나. 저녁 강가에서 나에게 묻습니다.

 

출처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