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버 택배
약속하지 않아도 찾아온 가을로 가득 찬 거리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해님을 따라 일터로 나온 할아버지가 하는 일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물건을 운반하는 택배 일을 하고 있는데요
쇼핑백을 여러 개 걸쳐 매고 지하철에 오르면 팔자 좋은 노인이라는
빈정거리는 눈빛을 볼 때마다 부끄러운 일은 해도 부끄러운 짓은 안 한다며
하루 종일 8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꼬박 일해 번 거라곤 17,400원이 전부지만
생계를 위해 이 일을 할 수 있는 이 계절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고 말하고는
긴 한숨 먼 그리움이 된 지난 이야기를 떠올려봅니다
하나 있는 아들 고시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퇴직금과 집까지 팔았지만
그 흔한 안부 인사조차 없는 어제를 말이죠…
기대와 희망으로 나도 내 세상을 보고 싶었지만 가족을 위해 몸부림치다 보니
썰물처럼 밀려가 버린 젊음을 묻고서 함께 할수 있었던 많은 시간들을
잃어버린 것뿐이라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시간을 지나 시급 천 원짜리도
이 일이라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늘 걱정이라는 할아버지는
그나마 노인이라 공짜로 타고 다니냐며 빈 몸뚱어리로 벌 수 있는 이 직업이
천직 같다며 슬픈 이야기를 슬퍼지지 않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바람 한 점 막을 수 없는 사무실도 없이 길거리에 의자를 놓고
주문 전화받는 회사지만 이렇게라도 벌어 아픈 아내의 병원비에 보탤 수 있다는
행복 하나를 가슴에 새기는 기쁨은 인생이라는 백지에 새길만 하다고 말하고는
집이 된 병원으로 퇴근하는 할아버지는 하루 일을 마치고 한강 다리 위로
펼쳐진 서울의 야경을 보면서 아내가 건강해지면 꼭 한번 이 길을
함께 달릴 거란 희망 하나로 걸어 들어온 병실에는 약기운에 취한
아내가 잠들어 있고 하루에 지친 지친 몸뚱어리를 간이침대에
눕히자마자 내일을 위한 꿈나라로 떠나고 맙니다
다음날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세상을 물들여 놓은 아침을
등 돌린 행복을 찾아 걸어 나가는 할아버지의 손에 병원에서 나온
아침밥으로 도시락을 싸주는 할머니 “난 괜찮다니깐
빨리 나으려면 임자가 든든히 먹어야지”
“힘든 일 하는 영감이 잘 먹어야죠”
아내가 있는 세상만큼 행복이 없다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챙겨 나가는
할아버지는 마음에 닿기 위해 함께한 지난날을 창문밖에 걸어둔
달님처럼 웃어 넘기는 할아버지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키 큰 가로등처럼 바라보던 할머니가 결혼기념일 날
할아버지에게 줄 조끼를 짜고 있던 그 시간

할 일 없는 해님이 하늘 꼭대기에 앉아 빈둥거리는 오후가 오는 동안
일이 없어 허공만 지키던 할아버지는 역전 귀퉁이 인적이 드문 곳에 앉아 아내가 싸준
차디찬 도시락을 꺼내다 뚜껑에 붙어있는 메모지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영감! 김치만 싸줘서 미안해요
빨리 나아서 당신 좋아하는 된장찌개 맛있게 해 줄게요.>
눈물에 말아 목구멍으로 넘긴 하루를 마중 나온 바람과 지친 인사를 나누다
다시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이유는 결혼기념일 날 아내에게
사주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인데요 "이 구두 얼마요?" "오만 원입니다"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오늘 일해 번 돈 2,300원만 매만지다
먹물 뿌린 저녁을 걷던 할아버지는 포장마차에서 아니 불러도 이미 찾아온
낱 술 한 잔에 하루를 묻고는 이별을 기다리는 새벽을 따라
걸어 들어온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겨울 목도리를 내밉니다

그런 할머니에게 고무신을 내미는 할아버지
잃어버린 걸 기억하는 불행보다 남아 있는 걸
기억하는 게 행복이란 걸 노부부는 알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 조끼 대신 목도리를… 구두 대신 고무신이 된 아픔을….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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