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장수에서 80여 년 전에 있었던 실화로, 방한근이라는 사람이 김중묵 법사에게 전한 이야기이다.
"인과因果의 세계가 참으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방한근 씨는 이렇게 말하고, 희고 길쭉한 이를 드러내 보이면서 빙그레 의미 있는 웃음을 지었다.
장수의 어느 마을에 최 부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조금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하늘은 아주 맑디맑은 날이었다.
이런 날씨에는 간장독 뚜껑을 열어놓고 햇볕을 쪼이기에 좋은 날이었다.
19살 먹은 최 부잣집 딸이 차례차례 간장독을 열어나가다가
한 간장독에서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빠져 썩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 이 간장독을 좀 보세요. 구렁이가 빠져 썩었어요!"
이 얘기를 들은 최 부잣집 노파는 조리로 썩어가는 구렁이를 건져냈다.
그리고 이날 밤, 부엌일하는 아줌마를 불러서 이렇게 일렀다.
"동네에 가서 가을 품삵으로 진간장을 갖다 먹으라고 하소."
이 말을 옆에서 들은 최 부잣집 딸은 어머니가 하는 일을 간절히 만류했다.
"어머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우리도 먹으면서 남을 주면 모르지만,
우리는 더러워 먹지 않으면서 남을 주면 어떻게 됩니까? 그냥 버립시다."
그러나 최 부잣집 노파는 듣지 않았다.
최 부잣집에서 가을 품삯으로 진간장을 먼저 준다고 하니, 동네 여자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당시에는 조선 간장이 귀해서 여자가 하루 종일 일해야 품삯으로 겨우 간장 두 사발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최 부잣집에서 간장 담그기를 서너 번 해 3년 이상 묵은 맛좋은 간장인
겹장을 품삯으로 준다고 하니, 너도나도 몰려와 간장은 금방 바닥이 나고 말았다.

그해 가을이었다.
간장으로 준 품삵 일꾼으로 일찍 추수를 마친 최 부잣집에서는
철에 어울리지 않게 주룩주룩 쏟아지는 가을비를 아무런 걱정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빗발이 더욱 굵어지면서 뇌성이 울리자 방안에 있던 최 부잣집 노파는
무엇이 잡아당기는 것처럼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이때였다. '우르르 꽝!'
천지가 깨지는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일더니
마당 한가운데 서있던 최 부잣집 노파가 '퍽!'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노파는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다.
그 순간 집안은 온통 난리가 일어났다.
노파는 방안에 옮겨놓은 얼마 후 의식을 회복했다. 그러나 하체가 마비되어 있었다.
결국 노파는 마비된 하체를 이끌고 고생고생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소태산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식물들은 뿌리를 땅에 박고 살기 때문에 그 씨나 뿌리가
땅속에 심어지면 시절의 인연을 따라 싹이트고 자라나며,
동물들은 하늘에 뿌리를 박고 살기 때문에 마음 한번 가지고 몸 한번 행동하고
말 한번 한 것이라도 그 업인業因이 허공법계에 심어져서,
제각기 선악의 연緣을 따라 지은대로 과보가 나타나나니 어찌 사람을 속이고 하늘을 속이리오."
사람이 주는 상벌은 유심有心으로 주게 되므로 아무리 공정하게 주려고 하여도 틀림이 있으나,
천지가 주는 상벌은 무심無心으로 줌으로 호리도 틀림이 없어 선악 간 지은 그대로 준다.
-인연산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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