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1150호
명칭 - 안중근의사유묵(安重根義士遺墨)
지 정 일 - 1986.10.15 ~ 2000.02.15
소 재 지 -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471 안중근의사기념관
시대 - 조선
관리자(관리단체) - 안중근의사숭모회
(1)국가안위노심초사< 國家安危勞心焦思 >
경술삼월어여순옥중대한국인안중근근배〔수장〕증안강검찰관
< 庚戌三月於旅順獄中大韓國人安重根謹拜〔手掌〕贈安岡檢察官 >
세로 149㎝, 가로 38.2㎝의 명주천(?)에 '국가안위노심초사< 國家安危勞心焦思 >
'(국가의 안위를 마음으로 애쓰고 속을 태움) 8자< 字 >를 중앙< 中央 >에 행서체< 行書體 >로
세로 쓰고, 왼쪽(보는 쪽에서는 오른쪽) 위편에 '증안강검찰관< 贈安岡檢察官 > ',
오른쪽(보는 쪽에서는 왼쪽) 아래편에 '경술삼월어여순옥중< 庚戌三月於旅順獄中 >
대한국인< 大韓國人 > 안중근근배 < 安重根謹拜 >'라 쓰여 있으며 그 밑에
안중근의사< 安重根義士 >의 수장인< 手掌印 >이 먹물로 찍혀있다.
장지< 長指 >는 세로가 17.1㎝이며 수장< 手掌 >은 가로로 11.5㎝인데
다른 수장< 手掌 >에 비해 엄지손가락이 벌어진 느낌이 든다(2㎝).
이 유묵< 遺墨 >은 안중근의사< 安重根義士 >가 1910년 3월 여순옥중< 旅順獄中 >에서
자신을 취조한 당시 여순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안강정사랑< 安岡靜四郞 >)검찰관에게
써준 것으로 야스오카는 사망직전 장녀 우에노 도시꼬(상야준자< 上野俊子 >)씨에게
물려주었으며, 그후 동경국제한국연구원의 최서면원장을 통해
1976년 2월 11일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된 것이다.
(2)위국헌신군인본분< 爲國獻身軍人本分 >
경술삼월어여순옥중< 庚戌三月於旅順獄中 >
대한국인< 大韓國人 > 안중근근배< 安重根謹拜 > 수장< 手掌 >
세로 137㎝, 가로 32.8㎝의 명주천(?)에 '위국헌신군인본분< 爲國獻身軍人本分 >'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8자< 字 >를 중앙< 中央 >에 행서체< 行書體 >로
종서< 縱書 >하고 오른쪽(보는 쪽에서는 왼쪽) 아래편에 '경술삼월어여순옥중< 庚戌三月於旅順獄中 >
대한국인< 大韓國人 > 안중근근배 < 安重根謹拜 >' 18자< 字 >를 썼으며 그 밑에
안중근의사< 安重根義士 > 자신의 수장인< 手掌印 >을 먹물로 찍고 있다.
이 유묵< 遺墨 >은 안중근의사< 安重根義士 >가 1910년 3월 26일 여순옥중< 旅順獄中 >에서
순국직전 안의사의 공판정 왕래에 경호를 맡았던 일본헌병 지바도시치
(천엽십칠< 千葉十七 >)간수에게 써서 준 것이다.
지바씨는 안의사 처형후 자진 제대하고 이 유묵을 보관하다가 그가 사망후
그의 부인과 조카딸 미후라 니꼬씨가 이어 보관, 1980년 8월 23일 동경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을 통해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되어 현재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2폭의 유묵< 遺墨 >은 서체< 書體 >, 수장인< 手掌印 > 등이
보물 제569호(1972)·1084호(1991)로 지정< 指定 >된 자유묵< 諸遺墨 >과
동일하여 안의사< 安義士 >의 친필< 親筆 >로 확인된다.
보물 제569-22호 및 보물 제569-23호 안중근의사유묵 으로 지정번호 변경됨에 따라해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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