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구우일모ㅣ九牛一毛

갓바위 2022. 5. 6. 08:23

 

○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서 뽑은 한 개의 털
○ 九(아홉 구) 牛(소 우) 一(한 일) 毛(털 모)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서 뽑은 한 개의 털, 많은 것 중에 가장 적은 것의 비유 
중국 최고의 역사가 司馬遷(사마천, 기원전 145년~80년)이 쓴 글에서 이 성어가 유래했다.

 

본기와 열전 등으로 나눠 기술한 紀傳體(기전체)의 효시 史記(사기)는 역대 정사의 모범이 됐다.

불후의 역사서를 남긴 사마천은 그러나 최고의 악조건 속에서 이 책을 썼다.

 

漢(한)나라 武帝(무제)때 역사를 기록하는 太史令(태사령)으로 있었던 사마천이

친구를 변호하다 생식기를 잘리는 중죄를 받고 치욕 속에서 완성했기 때문이다.

 

李陵(이릉)이란 장군은 북방에서 날뛰던 흉노를 수차례 무찔러

큰 공을 세웠지만 5000의 적은 군사로 8만 대군과 싸우다 사로잡히고 말았다.

 

대로한 무제가 이릉의 가족을 목 베고

죄를 추궁하는 어전회의를 열었을 때 홀로 사마천이 변호에 나섰다.

 

이릉의 과거 전공과 인품을 이야기하며 무제의 처사가

심하다고 했다가 하옥된 뒤 宮刑(궁형)을 받았다.  
 
사서를 완성하라는 부친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사마천은 이때의 심정을 친구에 보낸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에서 밝히고 있다.

 

‘만약 제가 형벌에 복종하여 죽음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숱한 소들의 몸에서 털 하나를

잃어버리는 격이니 땅강아지나 개미의 죽음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假令僕伏法受誅 若九牛亡一毛 與螻蟻何以異/ 가령복복법수주 약구우망일모 여루의하이이)?’

이렇게 해서 목숨을 이은 사마천이 저술에 착수한지 18년 만에 천고에 남을 사기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한(漢)나라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B.C. 99) 5000의 보병을 이끌고

흉노(匈奴)를 정벌하러 나갔던 이릉(李陵:?∼B.C. 72) 장군은 열 배가 넘는

 

적의 기병을 맞아 초전 10여 일간은 잘 싸웠으나 결국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듬해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난전(亂戰)중에 전사한 줄 알았던 이릉이 흉노에게 투항하여 후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안 무제는 크게 노하여 이릉의 일족(一族)을 참형에 처하라고 엄명했다.

 

그러나 중신을 비롯한 이릉의 동료들은 침묵 속에 무제의 안색만

살필 뿐 누구 하나 이릉을 위해 변호하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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