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스님 좋은 말씀

망상이 치성하면 할수록

갓바위 2022. 6. 9. 09:33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임행자는 분주해졌다.

팔방구리 드나들 듯 여기 삐쭉 저기 삐쭉 들여다보곤, 금세 다른 곳으로 내달았다.

그런 그이를 보고 원주스님은 한마디 놀리기를 잊지 않앗다.

 

"이놈, 임행자야, 엉덩이에서 휘파람소리 난다."

"내 엉덩이에서 휘파람소리 나면 스님 엉덩이에선 가죽피리소리나게요? 치이."

"아니, 저놈이....."

 

그이는 처음 절에 왔을 때의 조심스러웠던 마음은 어디 가고

이제는 스님들께 눈을 흘기며 툭툭 말대꾸와 변명도 많아졌다.

그래도 큰스님은 묵묵부답 아무 말씀도 않으셨다. 그리고 웬걸?

 

큼지막한 팔목시계 하나를 선물하시기까지 하셨다. 그이의 치기는 나날이 무성해졌다.

임행자의 마음은 봄날 햇살 속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자꾸만 붕붕 떠다녔다.

마음을 다잡아 아랫배 밑으로 겨우 끌어 앉혀놓지만, 마음은 어느새 사방팔방 떠다니며

그이에게 손짓하곤 냈다. 치성해진 망상만큼이나 졸음 또한 그이를 유혹했다.

 

유난히 잠이 많은 그이긴 했지만, 엉덩이를 바닥에 대기만 해도

밀려오는 잠을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잠의 유혹 또한 달디달았다.

아무런 미련이나 반성 없이도 깊디깊게 잠속으로 빠져들 수가 있었다.

 

큰스님께서 법당에 들어가신 시간을 아기다리 고기다리던(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행자의 자유시간이었다. 법상에 오르신 큰스님의 첫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그이는 방으로 들어가 시계를 끌러 옷소매에 한 번 쓰윽 문지르고는 콩 태 자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한시간쯤은 족히 잘 수 있다는 흐믓한 사실로 인해 드리워진 미소를

입가에서 채 지우지도 못하고 달콤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머리맡에 놓아둔 시계의 초침소리만이 똑딱똑딱 깨어 있을 뿐이었다.

 

"팍!" 무엇인가 깨어지는 듯한 커다란 소리에 그이는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올렸다. 바로 옆에 박살이 난 채로 깨어져 있는 시계를 보는 순간,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감히 어느 놈이 남의 시계를.......'

 

그 감히 어는 놈이 바로 큰스님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방에는 큰스님과 임행자 자신이외에도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이놈아, 법문은 늘 한 시간만 하라는 법이 있다더냐?

 

오늘은 네놈 낮잠 자는 현장을 잡으려고 일찍 나왔다.

어째 부처님 밥 먹는 놈이 대낮부터 그렇게 퍼질러 누워서 잠을 자느냐?

빚지는 것이 두렵지도 않느냐?'입이 잔뜩 나온 그이가 볼멘 소리로 한마디했다.

 

'그럼 어떡해요. 잠이 자꾸만 오는데요."

순간, 시계 깨지는 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머리에서 울려나왔다.

곧 이어 머리통이 화끈거리면서 불똥이 튀는 것 같았다.

아직도 큰 스님의 주먹이 그의 머리 위에서 곧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 이놈아. 아직도 졸음이 오느냐? 아직도 졸리면 한 대 더 때려주랴?

고얀놈. 졸음이 오면 쫓아내서 이겨내야지 그깟 졸음한테 져서 망상을 피워?

앞으로 졸음이 오거든 내게 데리고 오너라. 지금처럼 내 한 방에 쫓아내주마.

 

네놈 자는 꼴을 보니 어찌나 화가 나는지 하마터면 네놈 머리통을 부술 뻔했다.

다행히 옆에 시계가 있어 대신 부수었으나 깨진 시계한테 감사나 해라.

그리고 내일부터 법회 때 항상 나와서 법문을 듣도록 해라.

귀담아 들어두면 언젠가는 네놈의 피와 살이 될 게다. 알겠느냐?"

 

"네."바깥에는 벌써 봄이 다가왔는데도 법당 안은 아직 채 겨울의 냄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차가운 법당 바닥에서는 여전히 한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무어 그리 중요한 일들을 하는지 다들 엄숙하고 심각한 모습들로 앉아 있었다.

 

그이는 바깥의 그 뿌연 봄햇살 속으로 뛰쳐나가고만 싶었다. 그렇지만 어찌하랴.

큰스님의 지엄하신 명령이 떨어져 있는데.이상하게도 큰스님의 반야심경 강의소리가

맴맴 매미소리처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 땅에서 나는 소리처럼 울려나왔다.

 

공(空)이 어떻고 색(色)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임행자에게는 다 부질없다는

듯이 가물가물 멀어져만 갔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다리가 저려왔다.

손가락에 침을 잔뜩 묻혀 코끝에 발랐다.

 

진득한 침 냄새가 가실 틈이 없을 만큼 연신 침을 찍어다가

발랐지만 저린 다리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문득 그이는 어제 큰스님이 깨뜨린 시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 처음 가져본 시계였는데....., 그리고 어서 빨리 이 법회가 끝나서

재빨리 방에 들어가서 퍼질러 누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킥킥 웃음이 터져나왔다.

 

학교 다닐 때 교실에서 아무 일도 아닌 일로 눈군가 먼저 킥킥거리고 웃기 시작하면,

곧 이어 그 웃음은 산불 번지듯이 퍼져나갔다. 여기저기 쿡쿡 웃던 소리가 어느새

온 교실을 휘감아 돌아 나중에 걷잡을 수 없게끔 되던 순간이 떠올랐다.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웃음을 참으려고 그이는 고개를 들어 법당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높디높은 천장이 둥실 떠 있었다.

 

일 년 내내 걸려 있는 연등을 바라보다가 고개가 뻐근해져 숙이려고 할 즈음,

갑자기 연등들이 후드둑 흔들렸다. 임행자는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쳐다보는데

연등이 떨어져 내리면서 그 위 대들보가 소리를내며 내려앉는 것이었다.

 

하필 자신의 머리 위에서. "으악! 큰스님." 그러나 소용없었다.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대들보를 큰스님들 어떻게 하랴.

'아, 이제는 죽었구나.'

 

무서운 무게와 속도로 떨어지던 대들보가 커다란 힘으로 임행자의 머리를 때렸다.

그 아픔이라니! "악--." 그이는 자신이 죽었나 안죽었나 살며시 눈을 떠보았다.

눈앞에는 바위덩이만 한 주먹이 내밀어져 있었다.

 

'이게 뭘까?' "이놈아, 이제 정신이 드느냐?

시주밥 축내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법문 들으면서 잠까지 자?

고얀놈. 법문을 어디까지 했는지 이르지 못하면 또 한 대가 날아갈 터이니 어서 일러보거라, 어서!"

큰스님이 또 한 번 종주먹을 들이댔다.

"아, 알았어요. 시제법공상......,"

영담스님의 동승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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