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왕자와 악마의 출가 문답(4)

갓바위 2022. 9. 6. 09:30

마왕은 왕자의 영리한 말을 듣고, 암만해도 설법하기 전에

맹세를 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소, 당신의 말대로 듣기도 전에 맹세를 하는 것은 슬기로운 이의 법이 아니오.

그러나 당신은 이것만은 믿어 주어야 되겠소. 대체 무슨 일이든 잘못이 많고 일과 잘못이

적은 일이 있을 경우에 그 많은 것은 버리고 적은 것은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말이요.』

 

왕자는 그 자리에서 반대하였다.

『당신은 그 무슨 모르는 말을 하시오. 많든 적든 간에 잘못이 있는 것이라면

모두 버려야 하소. 예컨대, 많은 독이나 적은 독이나 사람을 해하기는 마찬가지요.

국왕의 진지에 독이 있든 천한 사람들의 밥에 독이 있든 사람에게 해가 되기는 마찬가지요,

그러니까, 슬기로운 이는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는 것에는 가까이 하지 않소.

 

슬기로운 이가 가까이하는 것은 전연 잘못이 없는 일뿐이요.

슬기로운 이가 가까이 하는 것은 아무런 번뇌도 없고, 아무런 흔들림도 없는,

번뇌의 경지를 떠난 세계로 궁극의 안락의 경지요.』

마왕은 왕자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내 말을 믿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거꾸로 응수하여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이것은 보통 내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 왕자를 항복시킬 방법이 하나 있다.

적든 많든 잘못이 있는 것에는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왕자가 이제부터 닦으려는 보살행에는 숱한 어려움이 있다.

 

오랫동안 생사의 세계를 왕래하여 삼독(三毒)의 중생에 섞이어 처자나 재물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와 눈과 살과 손발 등을 청하는 대로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보살의 수행에는 이런 커다란 어려움이 있다.

 

지금 이 왕자가 이 말을 들으면 어쩌면 퇴전(退轉)하여 소승(小乘)의 법을 닦고

열반에 들려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공격해서 왕자의 대승의 발심(發心)을 막아 주리라.)

마왕은 이렇게 생각하고, 또 왕자에게 말하였다.

 

『그렇소. 그 말대로요. 참으로 당신이 말하는 대로요.

많든 적든 간에 잘못이 있는 것은 가까이해서도 안 되오.

이것이 슬기로운 이의 법이요. 내가 말을 잘못해서 당신 마음에 통하게 못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도 지금 당신의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요.

 

이 세상에서 잘못이 전연 없는 곳은 열반의 깨달음의 경지뿐이요.

모쪼록 열심히 이 경지를 추구해 주시오.

이 생사의 미혹의 세계를 왕래하여 많은 괴로움을 받지 않도록 하시오.

 

우리들이 어머니 뱃속에 머물 때나 머물은 뒤나 다 고생입니다.

배 안에서 나올 때도 고생입니다.

그리고 자라서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괴로움, 미운 사람과도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괴로움 인생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생의 연속입니다.

 

우리들이 받은 이 몸은 또 얼마나 덧없고 연약한 것입니까,

태어나서 자라기까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걱정과 수고가 드는지 모릅니다.

이리하여 사람은 한없이 생사를 되풀이 해 갑니다.

 

이것을 듣고서 인생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은 슬기로운 이가 아닙니다.

당신은 아까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요?

 

「여러 부처님은 만나기 힘들고, 八난은 떨기 힘들다.

사람의 몸은 받기 힘들며 경법(經法)은 듣기 힘들고 또 믿기 힘든다.」고.

당신은 앞서 어렵다고 한 것은 지금 모조리 다 얻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헛되이 버리지 말고, 어서 이 더러운 현세를 떠나 주시오.

그리하여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 주시오. 나는 이것을 말하고 싶어서,

「맹세를 해 주시요.」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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