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 행복한가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시계를 갖고 산다

갓바위 2022. 11. 18. 09:10

사람은 자기만의 시계를 갖고 삽니다 그 시계는 모두에게

공평하고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세상의 시계와 다릅니다.
모두가 공유하는 시간과 달리 시계 주인만의 속도로 흐르죠.

 

행복한 사람의 시간은 그 행복을 손에 다 쥐기도 전에 흘러가버립니다.
눈을 한 번 깜빡였고, 당겨진 활시위를 놓았을 뿐인데
행복의 형태를 완전히 그리기도 전에 시간은 금세 저 멀리 달아나버립니다.

 

행복의 뒤, 허무 끝에서야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그 시간을 그리워합니다.

 

여기, 한 사람이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그를 엎드리게 한 것은 연인의 잠수이별일 수도 숨통을 조여 오는

가난일 수도 잠식시키는 우울이라는 병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의 시계는 멈췄습니다.
시침도, 분침도, 초침도 미동이 없습니다.

 

“야, 일어나. 이러는 거, 나약하다는 증거야. 힘을 내야지.”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야.” “누구나 힘들어. 너만 힘든 게 아냐.”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가

일어나길 바라며 마음을 담은 말들을 뱉습니다.
응원과 격려의 말에도 시계는 미동이 없습니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지만, 그 시간을 돌리는 데
필요한 것들이 없는 사람은 멈춰버린 시간 속에 있습니다.

 

텅 빈 시간. 텅 비어버린 그의 눈앞에 빠르게 돌아가는 시계를 찬 사람들,
옆 사람의 시계와 속도를 맞추는 사람들이 비칩니다.

그들 중에는 행복 대신 자신의 모든 기력을 시계 회전에 쓰는 사람들,
자신의 속도를 정할 수 없어 옆 사람의 초침을

힐끗힐끗 곁눈질하는 사람들도 있네요.

어쨌든 주인의 모양대로 시계는 굴러갑니다.
엎드린 그를 빼고 모두가요.

 

“시간이 멈춰도 돼. 네 시계가 다시 움직일 때까지 내가 옆에 있어 줄게.”

텅 비어 있었던 그의 눈에 누군가 들어옵니다.
형형색색 화려한 꽃으로 치장한, 우스꽝스러운 누군가는
그의 옆으로 바짝 붙어 앉습니다.

“말하고 싶은 게 생길 때 말해. 내 귀는 항상 열려 있거든.”

 

그는 오랜 시간,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는 때마다 치장한 꽃을 달리하여
그의 옆에 앉고, 서고, 또 어느 날은 춤을 추기도 합니다.

 

그는 누군가의 시계를 보았습니다.
침묵 앞에 아랑곳 않는 지침 없는 누군가의 시계는
또. 각. 또. 각 또. 각. 또. 각
한참을 보아야 움직임이 느껴지는 아주 느린 시계였습니다.

 

누군가가 꽃이 아닌, 돌고래 치장을 하고 온 어느 날,
우울의 파도가 저 멀리서 그를 향해 밀려오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눈에 별을 박고 그에게 말합니다.

“저 파도가 밀려와도, 난 너와 함께 파도를 맞고, 함께 헤엄칠 거야.”

그 순간, 누군가의 말이 그의 귀에 닿고 누군가의 눈에 박힌

별을 본 그 순간, 그의 시계가 또각 하고 움직였습니다.

 

-글 신보라  -그림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