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지련관음

갓바위 2021. 5. 6. 12:27

방경일글ㆍ남종진그림 

 

지련관음의 지련지련持蓮은 '연꽃을 들다' 라는 의미이다.

남종진 화백의 지련관음도에서도 관세음보살은 활짝 핀 연꽃송이가 달린 줄기를 들고 있다.

남 화백은 이 그림의 연꽃이 중생의 극락왕생을 의미한다고 한다.

 

33관음보살은 아니지만 관세음보살의 또 다른 분신이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망자들이 탄 배를 극락정토로 이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게다가 관세음보살은 극락정토의 주불인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이 아닌가.

이와 관련된 특별한 이야기로 송염(宋濂 1310~1380) 명나라 초기의 문이 겸 정치가)

 

고정선사(古鼎 禪師 임제 의현 선사의17세손,

무준 사범 선사의 전법제자)에 대해 남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정 선사가 입적할 때 그 문도들에게 말하였다.

"관음보살이 연꽃을 들고 마중 오셨다."

 

말을 마치자 선사는 편안하게 앉아서 입적했다. 선사의 다비를 마치자

혀뿌리와 치아가 몇 개의 구슬이 되어 파괴되지 않았고 오색 사리는 무수하게 나왔다.

기록에 따라서 '관세음보살의 연꽃 좌대가 이르렀다(觀世音蓮臺至矣)'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남송원명 승보전南宋元明僧寶傳>> 제11권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조정으로부터

혜성문민홍학보제존자慧性文敏弘學菩濟禪師라는 호를 받았으니 선리에 정통한 선사가 틀림없다.

 

고정 선사의 경우도 <일엽관음>편에서 살펴본 도겐(道元) 선사처럼 특별한 경우라고 하겠다.

염불수행을 하는 재가 불자가 연꽃을 든 관세음보살을 만난 이야기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심문숭沈文崧이 산동성 점화현에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연로한 부모님늘 모시며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앟고 집을 나가 멀리 서장(西藏 지금의 티베트)으로 가 버렸다.

 

고민하던 심문숭은 마침내 아들을 찾아 나섰다.

서장으로 가는 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를 모시는 두 하인은 충심으로 그를 돌봐 주었다.

 

하루는 안개 속에서 길을 가는 데 비탈지고 험한 고개에 이르렀다.

조심하지 않은 두 하인은 그만 절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심문숭은 말을 타고 있었는데 말의 발이 구덩이에 빠지는 바람에 그도 매우 위험한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홀연히 안개 속에서 푸른 연꽃을 든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더니 심문숭을 향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잠시 후 그는 골짜기를 건너고 있었는데 곧 안전하게 평지에 내려왔다.

 

심문숭은 자기는 비록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두 하인이

불행히도 생명을 잃게 된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절로 눈물이 났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아들을 찾아 가던 길을 가야 하지만

그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뒤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

소리쳐서 부르니 뜻밖에도 두 하인이 나타났다.

 

그들이 말하기를 골짜기로 떨어질 때 녹색 털을 가진 키가 한 길 남짓 되는 사람이

나타나더니 골짜기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주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주인과 하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크게 울었다.

 

나중에 심문숭이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 심문양沈文良에게 이 일을 말했다.

그러자 심문양은 사람을 시켜 푸른 연꽃을 들고

 

위험에서 빠져나오게 지도하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 지련관세음보살도에 공양을 올리고 절했다.

심문승은 청나라 사람인 심균안沈均安의 할아버지라고 하니

이일은 명나라 말이나 청나라 때 있었다고 보면 된다.

 

<<가신록可信錄>>에 의하면 심균안은 강소江蘇에서

고우高邮 사람으로 강서江西의 연화청 (蓮花廳 꽃을 관리하는 관청)에서

일했다고 하니 할아버지의 일에 감명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심균안은 청렴결백하여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경우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청나라 팽척목彭尺木 거사에게 희종希曾이란 조카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 요姚씨가 배에서 덩어리가 잡히는 병이 들었다.

이에 요씨는 발심하여 대비주大悲呪 수행을 했다.

 

어느 날 꿈에 한 할머니가 나타나 한 줄기 연꽃을 요씨에게 주었다.

요씨는 기쁘게 그것을 받았는데 몸이 가벼워지고 고통이 사라짐을 느꼈다.

이후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일행거집一行居集>>에 전하는 이 이야기는 요씨가 대비주를

외웠다는 것을 감안하면 꿈에 나타난 할머니는 관세음보살이다.

 

대비주는 <<천수경千手經>>의 신묘장구대다리니를 말하고

대비주수행이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신자들이 관세음보살의 도움을 받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처럼 관세음보살이 연꽃을 들고 있거나 주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불교에서 연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연꽃은 진흙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오염되지 않는다.

이는 불보살이 세상에 노닐지만 중생에 의해 오염되지 않는 것과 같다.

 

또 중생이 비록 진흙처럼 오염된 존재라고 하더라도

중생이 가진 불성佛性은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연꽃은 불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불보살이 앉거나 서는 자리가 연꽃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다.

 

이런 연꽃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는 표현은 바로 <<법화경>의 명칭이다.

<<법화경>>의 산스크리트어 제목은 Sad-dharma-pundarika-sutra다 Sad(사드)는

 

정(正 올바름)이나 묘(妙 오묘함)를, dharma는 법을, pundarika(푼다리카)는

대백련(大白蓮 크고 흰 연꽃)을 sutra(수트라)는 경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이 <<삿다르마 푼드리카 수트라>>를 번역하면서

<<묘법연화경>>이나 <<정법화경>>이라고 한 것이다.

 

<<법화경>>에는 여러가지 좋은 가르침이 많이 들어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것이다.

 

<<법화경>>의 이런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이 바로 연꽃이다.

식물은 보통의 경우 꽃이 핀 다음에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연꽃은 우리 인간이라고 한다면 연실은 불성을 말하는 것이니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터 불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법화경>>의 명칭에 사용된 연꽃이다.

또 그런 이치는 실로 오묘한 것이며 동시에 올바르다.

그래서 오묘함과 올바름이란 의미를 가진Sad(사드)라는 말이 경의 명칭에 사용되었다.

 

남종진 화백의 그림 속에서 지련관세음보살은 활짝 핀 연꽃을 들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불성을 찾으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항상 청정하게 가지는 것이다.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녹색의 연잎들 역시 우리에게 청정한 느낌을 준다.

또 '일심상청정一心常淸淨 처처연화개處處蓮花開'라고 했으니

 

마음을 항상 청정하게 가지는 사람은 그가 가는 곳마다 연꽃을 피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련관음의 응신은 순수함을 간직한 어린아이(동남동녀)의 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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