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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오리엔탈리즘

갓바위 2024. 2. 17. 10:07

 

 

종교적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Orientalixm)'이란 학문용어가 있다. '

동방취향'을 뜻하는 말로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가 1978년에 발간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제목이기도 하다. 사이드 이후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왜곡된 인식'을 의미하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동양과 서양을 구분한 후 서양의 것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우월한 반면,

동양의 것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열등하다고 멸시하는 편견이다. 서구인들

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런 편견은 어느새 동양인들의 의식 속에도 깊이 스며 있다.

 

사이드는 자신의 저술에서 수많은 예를 들어가면서 오리엔탈리즘의 담론들이

우리 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종교적 오리엔탈리줌'이다.

흔히 "불교는 자비의 종교라고 하면서 다른 종교에 비해서 사회복지에 대해서

무관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집도 절도 없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집이 없는 사람들은 절에서 받아 주었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수행과 신앙의 공간이면서 무주상보시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는 진정한 복지시설이기도 했다.

부모 없는 아이들 자식 없는 노인들을 모두 거두어 준 곳이 바로 사찰이았다.

 

다만 간판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역활이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인데,

근현대 이후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티 내지 않는'

진정한 사회복지를 '사회복지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호도하였다.

 

또 누가 퍼뜨렸는지는 몰라도 최근에는 "불교인들은 학문적으로 폐쇄적이다.

기독교인 중에는 불교학자가 많이 있는데, 불교인 중에는 기독교 신학자가

없는 것이 그 증거다."라는 궤변이 횡행한다.

물론 불교인 가운데서 기독교 신학자가 배출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 위해서는 인류의 역사가 지금과는 정반대로 전개되었어야 한다.

지금과 달리 중국, 일본, 태국 등 불교권의 여러 나라들이 근 ·

현대 이후의 세계를 주도했으면 그럴 수 있다는 말이다.

 

만일 이들 아시아 국가들이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서구를 식민지로 삼고 있었고,

그들을 하나하나 독립시켜서 지금에 이르렀다면 기독교에 대해서 마치

'오지(奧地)의 민속종교'를 대하듯이 '호기심'과 '연민의 마음'을 갖고서

연구하는 '불교도 신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근현대 세계의 정치, 종교 상황은 이와 정반대로 진행되었다.

 

또 많은 사람들은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에 다른 종교인들은

사회현실에 적극 관여 했는데 불교인들은 이를 외면했다."고 비판한다.

겉보기에는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이 역시 한반도의 정치와 종교의 역학관계에

대해 무지한 단견(短見))이다. 정치적 혹한기에 불교가 소극적이었던 것처럼

보인 이유는 한국의 불교인들을 외호하는 국제적 후견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제적 정교혼합조직인 가톨릭'이나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등에 업힌 개신교'의

경우 단 한람의 성직자가 구금되어도 국제적으로 공조하면서 그들을 외호하고,

'정치미개국'인 대한민국의 정부에 온갖 압력을 가한다.

그리고 매스컴을 통해서 이런 '영웅담'을 널리 알린다.

 

그러나 1980년에 일어나 불교계의 정상가지 유린했던 '10.27법란'에서 보듯이

당시의 정치권력이 보기에 불교는 배후에 '무서운 형님'이 없는 만만한 종교였다.

일부 우리나라 사람들의 '서구 숭배 근성'이 만들어 낸 종교적 '오리엔탈리즘'이

어느 곁에 불교계에까지 틈입하여 한 귀퉁이를 갉아먹고 있다. '사자(獅子)

신중(身中)의 벌레'와 같다 하루 빨리 쓸어내야 할 '자학적 불교관'이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