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새벽예불, 스무 살 수행자의 첫 마음을 깨우다

갓바위 2024. 3. 10. 10:41

 

 

새벽예불, 스무 살 수행자의 첫 마음을 깨우다

 

새벽 3시 사방이 어둠뿐인 때, 산사는 도량석으로 서서히 깨어날 준비를 한다.

대웅전에 앉아 있으면 고요함과 깨어남이 동시에 다가온다.

목탁의 운율에 실린 청아한 염불 소리가 캄캄한 어둠을 가르며

숲으로 날아가 나무와 바람과 새들을 깨운다.

동방에 물뿌리니 맑아지고

남방에 불 뿌리니 청량해지고

서방에 물 뿌리니 정토가 되고

북방에 물 뿌리니 평안해지네.

도량이 청정하여 더러움 없으니

삼보와 천료이여 이곳으로 내려오소서.

一灑東方潔道場

二灑南方得淸凉

三灑西方俱淨土

四灑北方永安康

道場淸淨無瑕穢

三寶天龍降此地

동서남북 사방에 관세음보살의 위력이 충만해지는 《천수경》,

〈사방찬(四方讚〉 염불 소리가 잦아지면 108번의 소종蘇鐘 소리가 이어진다

청향하다. 계속되는 《금강경》, 야보의 게송

산당에 고요한 밤 말없이 않았으니

적적하고 요요한 것 본래가 자연이로다.

어찌하여 서풍은 동쪽 숲에 불어드는가.

찬 기러기 외마디 울음 구만 리 장천에 울리는구나.

山堂靜夜坐無言

寂寂寥寥本自然

何事西風動林野

一聲寒雁淚長天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새벽예불,

스무 살 수행자의 첫 마음을 깨우다

'산당에 고요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게송의 첫 구절은 한없이 마음을

고요하게 쓸어준다. 생각해 보라. 조용한 산사에서, 그것도 가장 고요한

시간인 밤, 그 시간에 말없이 앉아 있는 마음의 상태는 얼마나 고요 고요한가.

 

새벽예불은 끊어질 듯 계속된다. 묵직한 범종 소리는 산과 법당과 몸을

깊은 울림으로 가득 채우고 법고, 운판 목어 차례로 천지간의 미물과

지옥 중생을 깨운다. 이어 발원문, 《반야심경》 독송으로 예불은 끝이 난다.

 

새벽 예불은 우리 땅 곳곳의 사찰에서 천 년을 넘게 이어온 의식이다.

오랜 세월 동안 다듬어진 종교의식은 그 자체로 오늘의 우리에게 수행자의

삶을 선물한다. 스무 살이 막 되던 설날에 해인사 행자실에 찾아들었다.

 

바깥의 영하의 날씨와 다르게 10여 명 행자들의 푸릇함과 열기로 가득한

방이었다. 방 가운데 눈길을 끄는 액자가 있었다. 단정하고도 엄숙한 글씨

한 점, '下心(하심).' 지월 선사의 글씨였다. 쌀 한 톨을 아끼고 지위를

따지지 않고 모든 이들을 보살이라 높이고, 도道를 이루고도 산을 지키는

산감 소임을 사셨다는 일화 속의 스님인지라 글씨에 무게감이 더했다.

 

그 글씨 한점에 갓 출가한 행자들의 설익은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힘이 있었다.

먼저 걸어간 수행자의 삶과 수행이 담겨 있기에 묵직한 경책이었던 것이다.

'하심'은 세상에 살 때 가졌던 욕망과 갈등, 긴장을 내려놓고 일순간 수

행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게 했다.

내려놓음이 비로소 수행자로 시작하는 첫 마음이었다.

 

강원(講院, 사찰의 승려 교육기관) 시절에는 매번 결제 시작일부터 1주일 동안

사찰예절 습의를 한다. 앉는 법과 차수 하는 법, 절 하는 법 예불 하는 법,

옷 입는 법, 발우공양 하는 법 등 대중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을

6개월마다 배우고 또 배운다.그때는 반복해서 배우는 것이 불만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지루하리만치 반복하던 배움이 지금껏

내가 수행자로 한 길을 걸어 올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음을 느낀다.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