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배움의 길이어야 한다

갓바위 2024. 3. 11. 10:10

 

 

배움의 길이어야 한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은 서로 소통을 하는 것이 그 목적이므로 말을 하고

글을 쓸 때는 보다 쉬운 표현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곧 공부를 하는 행위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남의 글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가끔 나의 글을 읽고 도움이 됐다거나 힘을 얻었다는 독자를 만날 때는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집필 부탁이나 강연 요청은 가급적 사양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있다.

 

나는 매우 낙관적인 성격이어서 날마다 설이나 추석 명절처럼 신나게

살아가고 있다. 우울하고 맥 빠진 분위기를 가장 싫어하고 어렵고 궁색한

사상도 싫어한다. 항상 낙관적 진취적이며 안온한 생 활 속에 고통을 즐거움으로

전환해내며 내가 받은 기쁨보다 내가 베푸는 것을 더욱 가치 있고 즐거운

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렇다고 초상집에서 노래 부르거나 춤추지는 않는다.

 

부처님은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강조하셨다.

죽는 소리, 우는 소리 자주하는 사람에게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주 잘할 수

있다는 칭찬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수학에 흥미를 느끼도록 격려하는 방식이다.

 

우리의 교육 방식은 어떠한가 생각해보자.

우리는 고해(苦解)에서 업과 복 가운데 더 무거운 쪽으로 가라앉는다.

이것은 교육받은 대로 살아간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이다.

 

살아가면서 실수한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실수를 통해 배움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자.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수많은 실수를 통해 내공이

쌓여야만 가능하다. 내가 잘 아는 일이라도 경솔하게 나서지 마라.

 

삶에는 가슴 뛰는 열정과 늘 새로운 것들고 가득 차 있다.

내가 힘든 것은 내 '욕심'이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이다.

좌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은 진심어린 말과 행동이 있었다.

 

사람에게는 꼭 욕심부려야 할 것 하나가 있다.

남의 글을 많이 읽는 것이다. 독서가 보물이다.

책을 읽으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천리마 꼬리에 붙어가는 쉬파리처럼 주변에 기대어 살게 된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하며 쉬운 밀만 찾지 말자. 쉬운 일에서는

성취도 적다. 인생사 세옹지마다. 오늘의 불행이 반드시 불행은 아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란, 새옹의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을 때

을 사람들은 "이제 당신 아들은 말도 탈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며

빈정거렸다. 며칠 후, 전쟁이 일어나 마을의 젊은 남자들 모두가 전쟁터로 끌려

자가 죽었지만, 새옹의 아들은 집에 있었기에 무사하여 오히려 큰 복이 되었다.

 

이렇게 인생의 길흉화복은 조석으로 변하기에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봄은 가장 낮은 곳의 볼품없는 생명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전국이 똑같고, 천둥 번개 칠 때 놀란 가슴도 누구나 같다.

 

금방 웃다가 금방 울 일이 생기는 것도 모두가 똑같다.

이왕 살 바엔 신나고 건강하게 살자.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음식을 잘못 먹으면 병에 걸리거나 죽기도 한다.

 

식탐가들은 뒷일은 생각도 없이 진상할 배라도 우선 먹고 보기에 과다한

영양 섭취로 불필요한 음식물들을 내장에 잔득 쌓아 음식물 찌꺼기에서

많은 독소를 일으키게 한다. 음식으로 '자신'을 과보호하면 만병이 발생한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브레이크가 없어 자유자재로 사고할 수 있지만,

장님 참외밭 들어가듯 눈앞의 일을 잘못 구별하면 치명상을 입게 된다.

'내 인생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남은 인생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를 숙

고해보면 정의로운 삶, 베푸는 삶, 참된 삶의 길이 보인다.

 

바보는 8만4천 번뇌를 가득 쌓은 부자다. 수행자는 8만 4천 번뇌를

모두 비워 빈털털리지만 내면에는 진귀한 보배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재벌 중 진짜 재벌이다. 공자 말씀 중 '호학(好學)'이란 말이 있다.

 

배우는 것을 즐기는 자만이 잘살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은 배움의 길이어야 한다. 탁한 정신으로는 만사불성인 것이다.

사라진 번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