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슬픔 ~찡한글 2093

걸을 수만 있다면

걸을 수만 있다면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설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말할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놀랍게도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나는 다 이루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부자 되지 못해도, 빼..

어느부부의 이별이야기

어느부부의 이별이야기 “미안하지만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어.” 나는 말했다. 아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없이 울었다. 난 미안했지만 등을 돌리고 집을 나왔다. 아내와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이혼 서류를 꺼냈다. “집과 자동차 부동산과 현금 그중에서 당신이 30%를 가질 수 있어”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튿날 집에 돌아와 보니 탁자에 아내가 써놓은 편지가 있었다. 눈물이 얼룩져 있어서 혹시 내 맘이 흔들릴까봐 읽지 않으려 하다가 나도 모르게 읽어 내려갔다.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다만 한 달쯤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달만이라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대해줘 아이 시험기간이니까 신경 쓰지 않게... 그리고 이혼조건으로 한 가지 부탁만 할게 당신..

슬픈 누나 이야기

◎* 슬픈 누나 이야기. *◎ 가난한 집안에 長女(장녀)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初等學校(초등학교)만 卒業(졸업)하고 남의 집 食母(식모)로 팔려가 몇푼 되지도 않은 돈을 받고 살다가 조금 머리가 커지자 縫製工場 (봉제공장) 에서 技術(기술)을 배우고자 시다바리 부터 始作(시작)해서 잠도 못자면서 죽어라고일만 하던 누님이 계셨지요. 한창 멋을 부릴 나이에 얼굴에 바르는 化粧品(화장품)하나 사쓰는 것도 아까워 안사고 돈을 버는대로 故鄕(고향) 집에보내서 동생들 뒷바라지 했답니다. 그 많은 먼지를 하얗게 머리에 뒤집어 쓰고 몸은 病(병)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소처럼 일만 해서 동생 셋을 大學(대학)까지 보내서 제대로 키웠지요. 이 누나는 시집가는 것도 아까워 사랑하는 男子(남자)를눈물로 보내기도 했..

아들아 너는 아느냐

아들아 너는 아느냐 (1999) - 엄상익 변호사 아들아 아들아 ! 아버지와 아들이 법정에 서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저 놈은 아들이 아닙니다. 제가 죽어도 저 놈이 위선을 떨면서 상주노릇을 하거나 저놈이 내 제사상 앞에 있는 것도 싫습니다. 저 놈한테 들인 유학비용 결혼 비용을 모두 돌려받고 싶어요. 단 한 푼도 상속해 주기 싫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아버지가 재판장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재판장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들 교육을 위해 무리해서 강남으로 이사까지 가고 과외를 시켜가며 공부 공부하며 키웠습니다. 유학을 보내고 집안 기둥이 휘어 지도록 비용을 들여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저 놈이 대기업에 들어간 이후는 아예 부모와 연락을 끊고 삽니다. 새해가 되어도 세배를 오지..

당신의 따뜻한 목소리

따뜻한 목소리... 열두 살 아들과 함께 급히 지하철을 갈아타다가 아이는 미처 타지 못하고 저만 전동차에 올라탄 적이 있었습니다. 멀어지는 아이의 모습... 아들에게는 가벼운 자폐 증세가 있었습니다. 혹시나 이렇게 생이별을 하게 되는 건 아닌가 너무 놀라고 당황한 저는 얼른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민아, 네 옆에 아줌마 계시지?" 혹시 그쪽 승강장에 아주머니 한 분은 계시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지요?" 순간, 거짓말처럼 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급했던 저는 아들과 함께 전철에 타달라고, 다음 정거장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아이고, 걱정말고 기다려요. 내가 꼭 내려줄게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아주머니의 대답에..

효성이 지극한 아들에 대한 감동글

효성이 지극한 아들에 대한 감동글 70세가 넘으면 부모를 먼 산에 내다 버리는 기로국에, 왕에게도 충성(忠誠) 하고 부모(父母)에게도 효성(孝誠)이 지극한 신하(臣下)가 있었다. 그 신하의 아버지가 70세가 되었다. 그렇지만 효성이 지극한 그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山에 갖다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뒤뜰에 아무도 모르게 굴을 파고 아버지를 모셨다. 그런데 이웃의 강대국(强大國)이 풀기 어려운 문제를 보내 트집을 잡기 시작하였다. 첫 문제는 두마리의 뱀이 든 상자를 주면서 수컷과 암컷을 구분하라는 것이었다. 둘째 문제는 큰코끼리 한 마리를 보내니 정확한 무게를 알아 맞추라는 것이었다 셋째 문제는 한 웅큼의 물이 큰 바다의 물보다 많은 경우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넷째 문제는 아래 위를 똑같이 잘라 다듬은..

장미꽃 파는 할머니

장미꽃 파는 할머니 "SNS에 사진을 올리자 길에서 장미꽃 파는 할머니에게 기적이 일어났어요" [인사이트] 장형인 기자 '작은 친절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선한 마음이 하나씩 모여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는 말인데, 이 명언을 직접 보여준 한 남성이 있다. 온라인 미디어 'pastiseru' 는 인도네시아에서 전해진 남성 장 요우즈(Zhang Youzhi)와 꽃을 파는 할머니(85)의 감동적인 사연이 소개됐다. 남성 장은 최근 업무때문에 한 지하철역을 지나던중 우연히 할머니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장미꽃을 팔고 있었다. 삐쩍 마른 몸과 굽은 등으로 할머니는 쪼그려 앉아 장미꽃을 사라며 힘없이 외치고 있었다. 급한 업무 때문에 그냥 지나친 장은 얼마 뒤 똑같 은 장소를 지나갔다. 역시 할머니는 장미꽃..

두유 베지밀로 유명한 정식품

■ 정식품...🗞📰📰 두유 베지밀로 유명한 정식품 창업주 정재원 명예회장이 20170년 별세했다. 100세. 소아과 의사였던 정 명예회장은 국내 최초로 두유를 개발한 데 이어 1973년 정식품을 창업했다. 소년은 급사(給仕)였다. 황해도에서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서울에 왔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는 대중목욕탕 심부름꾼부터 모자가게 점원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의학강습소의 급사 자리를 얻게 됐다. 등사기를 밀어서 강습소 학생들이 볼 강의 교재를 만들어내야 했다. “자연스레 교재를 들여다봤죠. 용어가 어려워 옥편을 뒤져가면서 독학을 하다 보니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의대에 다니지 않아도 시험만으로도 의사 자격증을 딸수 있었거든요.” 주경야..

서른이 넘도록 취직을 못 한 아들

♤ 아버지의 품격 ♤ 아래의 글은 감동적인 실화로서 서른이 넘도록 취직을 못 한 아들이 ! 어느날 어머니의 외출로 아버지와 부자간 소주한잔 하자면서 음식을 주문하면서 일어났던 사건에 관한 것으로서, ‘배달 중 넘어져서 음식이 섞여서 옴’이란 제목으로 SNS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나는 서른이 다 되어가는 취업 준비생이다. 요즘 코로나 상황이라서 그냥 부모님께 뭐라도 하는 것을 보여주려 도서관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다. 5시쯤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약속이 있어 나가셨고, 아버지만 계셨다. 아버지는 맛있는 것 시켜 먹자고 하셨다. 돈도 못 벌면서 부모님 돈으로 외식을 하는 상황이 매우 불편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함께 소주 한잔하자고 하셔서 족발과 쟁반국수를 시켰다. 그런데 시킨 지 1시간이 지..

어느 할머니의 수표

어느 할머니의 수표 어느 등산가가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갑자기 눈보라까지 쳐서 이제 죽었다고 생각할 쯤 멀리서 작은 불빛이 보였습니다. 작은 초가삼간 집 이였습니다. 그는 거의 탈진 상태에서ㅠ"계십니까? 계십니까?" 그때 어떤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그는 무조건 들어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할머니가 자신을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정신이 드오?" "아,, 죄송합니다. 허락도 없이 이렇게 폐를 끼쳐서" " 아니오,, 더 머물다 가시오. 눈보라가 멈추려면 며칠은 더 있어야 한다오" 할머니는 가난했지만 회장에게 겨울 양식을 꺼내어 함께 며칠을 보냈습니다. 등산가는 눈보라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을 아들을 대하듯이 정성껏 보살펴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