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아홉 빛깔의 사슴

갓바위 2022. 5. 22. 08:58

 

어떤 숲 속에 아홉 가지 빛깔의 털에 흰 뿔을 가진 사슴 한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강가를 거닐던 사슴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내를 보았다.

물에 빠진 사내는 나무토막을 붙잡고 발버둥치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신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비명을 들은 사슴은 재빨리 강물 속에 뛰어들어 물에 빠진 사내에게 다가갔다.

"내 등을 타고 양쪽 뿔을 꼭 붙잡으십시오!"

 

사슴은 사내를 등에 태우고 강기슭까지 데려다주었다.

물에서 빠져나오자 사내는 사슴에게 머리를 조이리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당신 덕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 보답으로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사슴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만약 나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면

내가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만약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안다면 아름다운 털과 뿔을 얻기 위해 나를 죽일 것입니다."

사내는 사슴에게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하고는 서둘러 가버렸다.

한편 그 나라의 왕비는 꿈속에서 아홉 빛깔 털과 흰 뿔을 가진 사슴을 보았다.

 

그 사슴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한 왕비는 잠에서 깨어나 왕에게 말했다.

"어젯밤 꿈에 이상한 사슴을 보았습니다.

그 털은 아홉가지 빛깔이고, 뿔은 눈과 같이 희었습니다.

 

나는 그 털로 방석을 만들고, 그 뿔로 부채의 손잡이를 만들고 싶습니다."

왕비의 말을 들은 왕은 왕비에게 사슴을 잡아주겠다고 약속한 후 방방곡곡에 명령을 내렸다.

"아홉 빛갈의 사슴을 잡은 자에게는 이 나라의 절반과 황금을 상으로 주겠다."

 

이 소문을 물에 빠졌던 사내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그는 몹시 기뻐하며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내게도 복이 터지는구나. 그 사슴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는 곧 궁궐로 달려가 왕에게 아뢰었다. "그 사슴이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왕은 기뻐하며 많은 군사를 이끌고 사내의 안내를 받아 숲으로 향했다.

그때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군사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사슴에게로 날아갔다.

"큰일 났어요. 왕의 군대가 당신을 잡으로 왔어요."

 

사슴이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이미 왕의 군대가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슴은 태연한 모습으로 왕이 타고 있는 수레앞으로 걸어갔다.

군사들이 활을 쏘려 하자 왕은 이를 말리며 군사들에게 말했다.

 

"잠깐 멈추어라. 이 사슴은 보통사슴이 아닌 것 같구나!"

사슴은 왕 앞에 이르러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어떤 은혜를 베풀었단 말인가?"

" 이 나라 백성의 목숨을 구해준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다음 사슴은 무릎을 끓고 왕에게 물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알려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러자 왕은 한 사내를 가리켰다.

 

사슴이 바라보니 바로 자신이 구해주었던 사람이었다.

사슴은 고개를 들어 찬찬히 그 사내를 쳐다보더니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저 사람은 며칠 전에 강물에 빠졌던 사람입니다.

 

나는 저 사람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때 저 사람은 은혜를 갚겠다며 스스로 나의 노예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를 배신하는군요.

차라리 저 은혜를 모르는 사람대신 나무토막을 건져주는 것이 훨씬 나을 뻔했습니다."

 

왕은 사슴의 말을 듣고는 사내를 바라보며 꾸짖었다.

"슬프다! 내 백성이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왕은 사슴을 놓아주고, 다시는 사슴을 잡지 못하도록 온 백성들에게 명했다.

 

*출전 : <<육도집경>>권6 <정진도무극장> / <<불설구색록경>> /

<<보살본연경>> 下 <사슴품> / <<본생경>>12 . 482 / <<경률이상>> 권11

 

은혜를 입었다면 애써 갚지 않아도 된다.

보답을 바라고 주는 은혜는 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은혜를 갚지 않을지언정, 입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임에랴.

불교가 정말 좋아지는 불교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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