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은혜를 모른 자, 화 있을진저

갓바위 2022. 5. 23. 09:28

 

어떤 숲 속에 깊이가 30길이나 되는 구덩이가 있었다.

어느 날, 사냥꾼 하나가 사슴을 쫓다가 깊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사냥꾼이 하늘을 쳐다보며 도움을 구하고 있는 사이,

근처에 있던 까마귀와 뱀도 함께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때마침 길을 지나던 수행자가 그들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구덩이 속을 내려다보았다.

 

컴컴한 구덩이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과 까마귀와 뱀이 서로 뒤엉킨 채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수행자가 측은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희들을 구해주리라."

 

수행자는 곧 나무껍질로 긴 밧줄을 만들어 그들을 모두 구해주었다.

사람과 까마귀와 뱀은 함께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반드시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수행자가 말했다.

 

"보다시피 나는 수행하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니 너희들은 굳이 은혜를 갚을 필요가 없다."

그러자 사냥꾼이 말했다.

 

"잠시 틈을 내어 제 집을 한번 찾아주십시오, 어찌 밥 한 끼 대접하지 못하겠습니까?"

이번에는 까마귀가 말했다.

"만약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저를 불러주십시오. 즉시 달려가겠습니다."

 

뱀이 말했다.

"어려움이 생기면 저도 불러주십시오. 꼭 와서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느 날, 수행자는 문득 사냥꾼의 집을 찾아갔다.

사냥꾼은 멀리서 수행자가 오는 것을 보고는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밥상을 차리라고 하면 어물어물 시간을 끌어요.

승려들은 한낮이 지나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합디다."

 

이윽고 수행자가 도착하자 사냥꾼은 아내에게 밥상을 차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부지런히 부억만 들락거릴 뿐 밥상을 내오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흘러 한낮을 넘기고 말았다.

 

한낮이 지나자 수행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냥꾼이 짐짓 수행자의 옷자락에 매달리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제 목숨을 구해준 분인데 부디 한 끼 식사라도 하고 가십시오."

"이닙니다. 수행자는 하루 한 끼만 식사를 합니다.

한낮이 지나면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수행자는 다시 숲으로 향헀다.

그때 수행자가 구해주었던 까마귀가 날아와 수행자에게 물었다.

"사냥꾼의 집에서 식사는 하셨습니까?'

 

"식사 준비가 늦어져서 한낮이 지나고 말았다."

"그랬군요. 그럼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돌아오겠습니다."

까마귀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곧장 그 나라의 왕궁으로 날아갔다.

 

까마귀는 왕비의 침실로 들어가 몰래 아름다운 보석 하나를 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숲으로 날아와 수행자에게 바치며 말했다.

"제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이 보석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수행자에게 보석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래서 수행자는 까마귀가 전해준 보석을 사냥꾼에게 주었다.

한편, 귀한 보석을 잃어버린 왕비는 즉각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렸다.

 

왕은 부인이 무척 슬퍼하는 것을 보고 모든 신하들에게 명했다.

"잃어버린 보석을 가져오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상을 내리겠다."

이 소식을 들은 사냥꾼은 재물에 눈이 어두워 수행자를 찾아가 말했다.

 

"당신이 내게 건내준 보석은 이 나라 왕비의 것이오.

훔친 것이 분명하니 당신을 궁궐로 데려가야겠소."

사냥꾼은 튼튼한 밧줄로 수행자를 묶은 다음 궁궐로 데리고 갔다.

 

왕이 수행자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이 보배를 얻었느냐?"

수행자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까마귀가 가져다주었다고 말하면 나라 안에 있는

까마귀가 모두 죽게 될 것이고, 자신이 훔쳤다고 말하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수행자는 끝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수행자가 말을 하지 않자 신하들이 달려들어 매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몽둥이가 온몸을 두드리는 데도 수행자는 왕을 원망하지 않았고, 사냥꾼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화가 난 왕은 수행자를 끌어다가 땅에 묻고 머리만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런 다음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내일까지 말하지 않으면 목을 베리라."

이제 수행자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그때 문득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신을 불러달라는 뱀의 말이 떠올랐다.

수행자는 마음속으로 뱀을 불렀다. 그러자 금세 뱀이 나타나 수행자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수행자는 그동안의 일을 낱낱이 설명했다.

수행자의 설명이 끝나자 뱀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에게는 외아들이 있는데 제가 궁궐에 들어가서

독니로 왕자를 물 것입니다. 그때 이약을 쓰십시오."

뱀은 약봉지 하나를 물어다 앞에 놓은 다음 즉시 궁궐로 향했다.

 

그날 밤, 태자는 뱀에 물려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급해진 왕이 급히 의원들에게 명했다.

"태자를 살리는 자가 있으면 나라를 나눠주리라."

 

그 소식은 곧 수행자에게 전해졌다. 수행자는 급히 관리를 불러 말했다.

"네게 신비한 약이 있는데, 그 약으로 못 고치는 병이 없습니다."

관리는 즉시 왕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알렸다.

 

왕은 급히 수행자를 불러오게 하여 태자를 치료하도록 했다.

이윽고 수행자는 뱀이 건네준 약으로 태자를 치료했다.

왕이 기뻐하며 수행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훌륭한 재주를 가진 수행자인데 무엇 때문에 보석을 훔쳤는가?"

그제야 수행자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이야기했다.

수행자의 말을 들을 왕이 사냥꾼을 불러 말했다.

 

"너는 커다란 공을 세웠으니 가족들을 모두 불러오라. 약속대로 내가 상을 주리라."

그러자 사냥꾼의 친척들이 벌떼같이 궁궐로 모여들었다.

사냥꾼의 친척들은 모두 모이자 왕이 말했다.

 

"은혜를 모른 자는 가장 악한 자이다!"

그런 다음 왕은 사냥꾼의 친척들을 모두 처형해버렸다.

 

*출전 : <<육도집경>> <인욕도무극장> / <<육도집경>>

권3 <불설사성경> / <<경률이상>> 권11 . 26

보답을 기다리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보답을 기다리는 베품도 베풂이 아니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자 또한 베풂을 받을 자격이 없다.

불교가 정말 좋아지는 불교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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