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껍데기는 가라

갓바위 2022. 5. 22. 09:05

 

'떠억' 하니 잘 차려진 상 위에는 별별 맛난 음식이 가득 놓여 있었다.

인절미, 잡채, 송편, 더덕구이 등, 무엇보다도

한 접시 가득 담겨져 있는 갈비찜은 그의 입 안에 군침을 돌게 했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임행자는 재빨리 갈비찜 접시로 손을 뻗었다.

제일 먹음직스럽게 생긴 놈으로 하나 집어들어 막 입에 넣으려는 순간

'딱' 하고 무언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동시에 눈이 번쩍 떠지고 갈비찜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네. 이놈. 아무리 며칠째 잠좀 못 잤다고 등燈 만들면서 조느냐? 게다가 꿈가지 꾸면서......"

"아니에요, 큰스님. 저 갈비 먹는 꿈 안 꿨어요."

 

"어, 그래? 네 꿈 속에 나왔던 게 갈비였더냐, 이놈아 등 만들며서 괴기까지 먹어?

남의 살이 그렇게 먹고 싶거들랑 산을 내려가거라. 고얀놈."  "......."

한쪽 구석에서 원주스님이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그래도 미처 못 먹은 갈비찜이 못내 아쉬운지 그이의 뱃속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났다.

임행자는 얼른 큰스님의 눈치를 살폈다.

큰스님은 언제 댜단을 쳤나 싶게 열심히 등을 만들고 계셨다.

 

대나무를 쪼개어 등살을 만들고, 분무기에 물감을 넣고 치익치익 뿌리면서 종이에 색물을 들였다.

종이에 글자 구멍을 파서, 또 다른 종이 위에 놓고 분무기로 뿌리면,

밑종이에 예쁜 색으로 '부처님 오신 날' 글자가 생기곤 하였다.

 

큰스님 주위엔 고운 팔각등, 연등, 수박등이 자꾸만 싸여갔다.

스님들 중 제일 등을 잘 만드는 큰스님을 보고 그이는 생각했다.

'큰스님은 선승이시라면서, 언제 저렇게 등 만드는 실력을 쌓았지?

 

방에서 벽만 보고 평생 참선만 하신줄 알았더니......'

"이놈, 임행자야?" 갑자기 부르시는 큰스님 목소리에 그이는 화들짝 놀랐다.

"너, 선禪이 무언지 아느냐? 방에 앉아서 벽만 보고 있으면 그게 참선인 줄 아느냐?

 

참선이란 밥 먹으면서, 일을 하면서 하는 거란다.

해서 옛 선사들은 노동과 선이 둘이 아니라고 하셨느니라. 알겠느냐?"

"네!" 그이는 미칠 노릇이었다.

 

자기 마음속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큰스님이 갑자기 무섭기가지 하였다.

그런 임행자를 쳐다보는 큰스님 입가에 미소가 스치는 듯했다.

 

"이놈아, 등은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 하느니라.

생각해 보거라 네가 정성을 다해 만든 이 고운 등이 '부처님 오신 날' 밤을

온통 밝힌다는 것을. 어떠냐, 생각만 해도 즐겁니 않느냐?

 

또 네가 만든 등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신심을 낼 거고 말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 불성에 불을 밝힌다는 생각으로 등을 만들어야 한다. 알겠느냐?'

갑자기 그의 마음은 부풀어올랐다.

 

참말 큰스님의 말씀처럼 자신이 만든 등이 이 세상의 어두운 곳을 모두 밝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바람이 난 임행자의 손길에서는 예쁜등이 계속 만들어져 나왔다.

수박등, 팔각등, 연꽃등...... 원주스님도 바쁘게, 만들어진 등을 들고 나가 도량 가득 둥실 매달았다.

 

아침 햇살에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은 높이 매달린 등들을 이리저리 흔들리게 했다.

그때마다 산 속 절 전체에는 맑은 음악소리가 퍼지는 듯했다.

'부처님 오신 날' 을 기뻐하였다.

 

그이는 자신이 만든 등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때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련하게 . 그러다 점점 확실하게....

이게 무슨 소릴까? 눈이 번쩍 떠진 그이는 달콤한 잠에서 깨어났다.

 

밖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쏴아아__."

밤새 만들어 달아놓은 연등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이. 세찬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곱게 물들여 놓은 색들이 흉칙한 모습으로 번져버리고 수박등,

연꽃등, 팔각등은 온데간데 없이 비에 젖은 종이만 너덜거렸다.

 

'아! 세상에 이럴 수가!' 임행자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몇 날 며칠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하여 만든 등이,

눈 깜짝할 새 이렇게 흉한 꼴로 된 것이 너무나 야속했다.

 

옆에서는 큰스님이 쏟아지는 비를 한참 바라보고 계셨다.

갑자기 큰스님께서 합장을 하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허! 비님, 잘도 오시는구려. 더 세차게 오셔서. 허망한 껍데기에 집착하여 탐심 . 진심 .

치심에 사로잡힌 중생들의 마음일랑 깨끗이 쓸어가버리시구려. 나무 석가모니불......"

영담스님의 동승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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