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말 먹이 보리(2)

갓바위 2022. 5. 23. 09:33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아난(阿難)이 왕궁을 찾아와 보았다.

그런 즉 수문장(守門將)은 지루한 듯 졸고 있고 궁중은 아주 조용하며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아난은 이상히 여겨서, 수문장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무료해 하고 계십니까?

 

왜 일을 하지 않습니까?』 수문장은 이상한 듯 반문했다.

『아난님, 우리들에게 무엇을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국왕은 이 우안거(雨安居) 三개월 동안 승단(僧團)의 음식, 탕약, 의복, 침구,

이 모든 것을 공양케 해 달라고 부처님께 청했었는데 아무 일도 안하고 졸고 있으면,

부처님을 비롯해서 많은 스님들은 단식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않는가요?』

 

그러자 수문장은 대답했다.

『아난님, 국왕은 오백명 분을 준비하라고는 명하셨지만

누구를 위하여서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임금님께 분명하게 아뢰어 보고 와 주시요.』

『아난님, 그것은 안 될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임금님은 이 三개월 동안 누구나 임금님을

뵈올 것을 금하셨고 만일 뵈올려고 하는 자는 목을 벤다고 영을 내리셨습니다.

내 머리는 두 개가 아니니까 어떻게 임금님을 뵈올 수가 있겠습니까?』

 

아난은 이 얘기를 듣고, 급히 연목수(練木樹) 밑에 계시는 석존께로 달려가,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로써, 석존은 아난에게 명하셨다.

『아난아, 수고스럽다만, 너는 이제부터 대의(大衣)를 입고 종자 한 사람을 데리고

성내에 들어가, 사람들의 내왕이 많은 길목에 서서 이렇게 외치고 오너라.

 

「이 한 여름 三개월의 우안거 동안 승단의 음식, 탕약, 의복, 침구를 신심(信心)을 가지고

공양하고자 하는 자는 없는가? 이제 막 안거(安居)에 들어가고저 하는 때이다.」라고.』

아난은 석존의 명을 받아, 다시 성내로 들어가 길목에 서서 이렇게 외쳤다.

 

그러자 성내의 장자(長者)들은 모여들어 아난에게,

『아난이여, 우리들은 한 사람의 힘으로라도, 우안거 동안의 공양정도는

바칠 수가 있고 또 바치고 싶습니다만, 앞서 국왕으로부터 포령이 내려

이 여름 三개월 동안 부처님이나 스님들을 공양해 드리는 것을 금지 당했습니다.

 

만일, 이 금지령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공양을 바칠 수가 없습니다.』

어디를 가보나, 어느 장자도 다 이렇게 말하며 거절하는 것이었다.

 

이 무렵, 오백 마리의 말을 끌고, 북방에서 이 성내로 온 상주(商主)가 있었다.

그는 이미 장마철에 들어갔으므로 진흙 때문에 말이 상할 것을 염려하여,

三개월 동안 이 성내에 머물 것을 결심했다.

 

그는 자기가 타고 올 제일 좋은 말에는 매일 막 먹이로 보리 두 되를 주고,

나머지 말들에게는 보리 한 되씩을 주고 있었다.

그는 최근에 내린 승단에 관한 공양 금지령도 들어 알고 있었다.

 

아난은 이 상주에게로 가 우안거 동안 공양을 바칠 것을 청했다.

그는 아난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 성내에 언제까지 있을 사람이 아니다. 임금의 금령(禁令) 같은 것은 꺼릴 필요가 없다.」

 

그리하여 그는 아난에게 말했다.

『아난님, 나는 내가 타고 온 말에는 매일 먹이로 보리 두 되,

다른 말에게는 보리 한 되씩을 주고 있습니다.

 

만일 이 보리라도 좋으시다면, 나는 부처님께 매일 두 되, 다른 스님들에게는 한 되씩,

五백 마리의 말의 먹이를 고스란히 공양하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아난은 이 말을 듣고, 곧 석존께 돌아와 이 일을 아뢰었다.

 

석존을 이것을 들으시고,

『말먹이를 먹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나의 업보(業報)이다.

나는 기꺼이 이것을 받아들이겠다.』

 

그리고서는, 한 개의 게(偈)를 만들어 아난에게 보이셨다.

『비록 백겁(百劫)을 지날지라도 만들어 놓은 업은 사라지지 않고

인연(因緣)이 맺어질 때 마침내 그 업보는 내게로 돌아오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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