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솥안의 고기

갓바위 2022. 8. 12. 09:45

석존께서 왕사성(王舍城)의 영취산(靈鷲山)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바라나시국의 바라나시성에 그릇된 생각은 고 가라가지를 다스리던 왕이 있었다.

 

이 왕에게 한 사람의 태작가 있었는데 어느 때 조그마한 잘못을 저지른 것을

크게 성을 내어 그 귀여운 태자를 나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제 나라를 쫓겨난 태자는 어제까지는 금전옥루(金殿玉樓)에서 아무런 걱정도 없이

쾌락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의지할 사람도 없이 쓸쓸하게 방랑의 길은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되어 어떤 오막살이에서 그 부인과 함께 살게 되었다.

 

아무런 저축도 없고 준비하였던 얼마 안되는 식량도 다 없어져서 마침내는

그날의 끼니도 이을 수 없는 궁한 처지로 빠져 들어가고 말았다.

 

먹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현실에 부딪친 태자는

할 수 없이 산에 가서 사냥도 하고 또 벌레 따위를 잡아서 그것을

식량으로 부부의 실낱같은 목숨을 이어나가는 형편이었다.

 

어느 날, 태자는 전과 같이 산으로 사냥을 하러가서

큰 짐승을 한 마리 발견하고 그것을 잡아 죽여 껍질을 벗겨서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부인에게 그 고기를 솥에 넣어 끓이라고 하였다.

 

부인이 솥에다 넣고 끓이는데 물이 졸아 들었으므로 태자는,

『고기가 아직 덜 끓었는데 물이 졸았으니 물을 길어다 주시오.』

하고 부인에게 말하였다. 『예, 물을 길어 오지요.』

 

하고 골짜기로 물을 길러 갔다.

그 뒤에 태자는 너무도 배가 고파서 반쯤 익은 고기를 솥에서 꺼내어

부인이 없는 틈에 다 먹어버리고 한 토막도 남겨 놓지 않았다.

 

골짜기로부터 힘들여 물을 길어 가지고 돌아온 부인은

물을 넣으려고 솥뚜껑을 열었더니 고기가 없으므로 깜짝 놀라,

『당신, 고기 어떻게 했어요?』 하고 물었다.

 

『당신이 없는 동안에 짐승 자식이 갑자기 살아나 솥에서 뛰어나와

지금 막 달아났어. 뒤쫓아 갔으나 잃어버리고 말았어.』

『절반 익은 고기가 살아나는 일도 있어요. 죽어서 익은 고기가 어떻게 달아나지요?』

 

『아니야, 그게 있었으니 말이야, 나도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남편의 말이나 태도에 암만해도 수상한 점이 있어 부인의 의심은 풀리지가 않았다.

 

(이것은 틀림없이 남편이 배고픔에 못 이겨 이 솥 안의 설익은 고기를 먹은 것이 분명하다.

그 변명으로 저런 거짓말을 해서 나를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하고 짐작하였다.

 

그 뒤로는 남편의 성실치 못함을 원망하고 그 행동이 미워져서

부인의 마음은 잠시도 즐거운 때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이 부부 사이에는

틈이 생겨 모든 일에 재미없는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렇게 먹구름이 깔린 생활이 수년동안이나 계속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부왕(父王)이 돌아가셨으므로 대신들은

태자의 오막살이로 찾아와 왕위에 오르라고 태자를 맞이하였다.

 

태자는 기뻐하며 귀국하여 바라나시국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므로 먹구름에

덮였던 유랑생활도 이제 광명을 찾아 물질상의 괴로움이라는 것은 완전히 없어졌다.

 

새로운 왕이 된 태자는 진귀한 보배, 옷 따위 부인이 좋아하는 물건을 많이 주어

기쁨을 나누려 했으나 부인은 왕이 주는 보배를 받기는 했으나 조금도 반가운

얼굴을 하지 않고 산골 오막살이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늘 그늘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부인이 언제나 그늘진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왕은 걱정이 되어,

『내가 가지고 있는 보배란 보배는 다 당신에게 주었는데 당신은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고, 전과 마찬가지로 개이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무슨 마음에 안드는 일이라도 있소.』

 

하고 물었다. 그 때, 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생각은 달린다 내 낭군의 산 속의 오막살이 외로운 살림, 활을 메고 칼을 차고

산과 들을 사냥 다니셨지. 짐승을 잡아다가 껍질을 벗기고 그 고기를 솥에 삶을 때,

 

나는 골짜기에 물깃는 동안, 대왕 혼자서 고기를 먹고, 한 토막도 남겨 놓지 않고는,

고기가 살아나 도망했다고 멀쩡하게 나를 속여도.

서글픈 그 마음 지금도 오히려 원망스러움은 어이하리요.』

 

그 때의 왕자는 지금의 석가모니이시고, 그 부인은 지금의 야쇼다라(耶輪陀羅)이다.

그 때 왕자가 몰래 고기를 먹고, 왕위에 오른 뒤, 재보를 왕비에게 주어 친하기를

바랐으나 부인이 그것을 원망하고 기뻐하지 아니하였다.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지금 석가모니께서

보배를 야소다라에게 주어도 부인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관련 문헌 :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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