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신선과 왕도(1)

갓바위 2022. 8. 14. 08:13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어느 때 염부제(閻浮提)의 큰 날에 한 대왕이 있었다.

 

그 왕은 위엄과 용맹과 책략을 아울러 갖춘 명군이었으므로,

열여섯의 작은 나라가 모두 하나 같이 대왕에 대하여 신하의 예를 취하였으며,

그밖에 서른여섯 나라도 또한 모두 대왕에게 정목되어,

왕중의 왕으로서 대왕의 명성은 솟아 오르는 해에나 견줄 만한 것이었다.

 

염부제의 명예와 부와 권세를 한 손에 쥐고 있는 대왕도 병에 만은 이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위세가 당당하던 대왕도 이제는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

결국 저승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될 날이 왔다.

 

대왕 자신도 최후의 날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었던 만큼, 자기가 죽은 뒤에 왕위를 물려주는 문제가

무엇보다도 대왕의 마음을 괴롭히었다. 대왕에게는 세 왕자가 있었다.

 

그러나 첫째 왕자는 어리석으며, 둘째 왕자는 몸이 허약하고

셋째 왕자는 총명·용건·박학·책략을 아울러 가진 문무 겸전의 소질이 풍부하여

대왕의 후계자로서 하나도 모자람이 없으나,

 

다만 셋째 왕자라는 것과 너무 나이가 어리다는 점이 문제일 뿐이었다.

이 두 가지 점에서 큰 나라의 왕자로서 적당한가 어떤가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첫째 둘째의 두 왕자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사정이었으므로,

대왕의 생각은 늘 셋째 왕자에게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대왕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었다.

이에 세 왕자는 물론, 백 사람의 대신, 백 사람의 부인까지

모조리 대왕의 머리맡에 모여, 대왕을 우러러 보고는 깊은 시름에 잠기고,

 

주마등(走馬燈)같은 지난날의 추억에 또는 이윽고 다가올

최후의 정경에 걱정이 되어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 대왕은 여러 신하를 향하여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의 임종은 드디어 가까워졌다.

그래서 왕위에 대한 이야기인데, 세 왕자 중에서 가장 적임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사양 말고 이야기해 주기 바란다.』

 

이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미리 짐작했던 일이요

세 왕자에 대하여서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으므로 이 자리에서

세 사람 중의 누구라도 꼬집어서 왕에게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왕이시여, 왕위의 문제는

오로지 대왕의 생각으로 결정하실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대왕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일임한다는 것이냐?

그것은 안 돼. 내가 죽은 뒤의 정치도의, 나라를 다스리는 방책,

제후의 통솔 등의 문제도 있는데, 통틀어

나에게 일임한다고 하지만 세상을 떠나는 나에게 어떻게 하는 말이냐.』

 

『대왕이시여, 대왕의 마음속에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생각은 있을리 없사옵니다.

평등한 자비로써 세 왕자에 임하고 계시는 줄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상 대왕의 마음을 괴롭혀 드리는 것도

신하로서 어떨까 하와 신들의 생각하는 바를 솔직히 아뢰겠습니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후계자에는 셋째 왕자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신하는 대왕의 물음에 대답하고 각각 물러갔다.

그 때 대왕은 정전에 계셨는데 여러 신하들과의 응답에 갑자기

피로를 느끼어, 세 왕자에게 명하여 침상 위에 몸을 눕혔다.

 

그 때, 셋째 왕자는 부왕의 머리를 안고, 둘째 왕자는 발을 붙잡고,

첫째 왕자는 손을 잡았다.

대왕은 세 왕자의 부축을 받아 병상에 누운지 얼마 아니하여 숨을 거두었다.

관련 경전 : 칠불팔보살신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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