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2975

이 나라의 철부지들

이 나라의 철부지들 ​ 현재 정부 요직에 오른 이웃종교인들에게 묻는 말이다. 중동을 포함하여 서구의 역사를 피로 물들인 종교분쟁의 역사를 아는가? 11세기 말부터 근 2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명 높은 '십자군 전쟁', 독일 인구 가운데 무려 3/4을 줄어들게 했다는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30년 전쟁',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에서 절정을 이룬 기독교도들의 유태인 학살, 북아일랜드의 가톨릭과 영국 성공회 간의 처절한 종교분쟁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살상을 할 경우 형법에 의거한 처벌을 받기에 유럽에서와 같이 타종교인에 대 한 대규모 살육을 자행하지는 못했겠지만, 8,15광복 이후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준 은혜의 나라'인 미국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위력을 배경 ..

진정한 종교란 무엇인가

진정한 종교란 무엇인가 ​ 얼마 전 TV에서 본 장면이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취재하는 이스라엘의 한 작은 언론사를 운영하는 기자들에 대한 얘기였다. 서너 명의 기자들이 중무장을 한 이스라엘 병사들이 지키는 초소에 도착하였다. 지척에 있는 곳인데 초병들이 이런 저런 핑계로 시간을 끄는 바람에 기자들은 반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도착하였다. 항상 그랬다고 했다. 그리곤 그 전날 있었던 이스라엘 공군기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취재를 시작했다. 몇 명이 죽었는지, 누가 죽었는지, 어디를 다쳤는지, 어떤 일을 하다가 다쳤는지. 지금의 심경이 어떤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울먹이며 그 모든 물음에 대답을 했다. 취재에 무척 협조적이었다. 그 기자들이 자신들의 처절..

불자의 조직화

불자의 조직화 ​ 이 시대의 불교인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가 있다. 불자들을 조직화하는 일이다. 이는 자등명, 법등명'하라는 부처님의 유훈에는 어긋나는 일일지 몰라도 조직화 된 셈족의 종교(semetic Religion)의 공격으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한 정당방위의 방편이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태교와 같은 셈족의 종교는 '순수한 종교'라기 보다는 '종교의 이름을 내건 사회조직이다'이다. 독단적 이념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다. 전철이나 거리에서 '예수지옥, 불신천국'을 외치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6.25즈음하여 붉은 완장을 찼던 공산당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히틀러에게 충성을 다했던 나치스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조직에 대한 이들의 충성심은 결코 종교심이 아니다..

빈터의 교훈

빈터의 교훈 ​ 서울에서만 살다가 이 곳 경주캠퍼스에 부임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작년 이맘 때 아직 연구실을 배정 받지 못했던 필자는 강의가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버스를 타고 혼자 첨성대와 석굴암 등을 돌아본 적이 있다. 그 전에도 몇 번 경주에 와 보긴 했으나, 국보급 문화재들의 실재를 확인한 후, 그 방문의 증거를 남기기 위해 그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소위 관광여행으로 그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작년 봄 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루어진 하루 동안의 나들이에서 필자는 경주의 문화재 하나하나와 그 문화재를 만들어낸 신라인의 후손들의 모습들을 찬찬히 살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때 필자에게는 세 가지 점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첫째는 첨성대와 석굴암, 또 감은사 석탑 등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

탄허 스님의 예언과 정보통신문화

탄허 스님의 예언과 정보통신문화 ​ 유 · 불 · 선 삼교에 통탈하시고, 선교(禪敎)를 겸수하셨으며, 교학 중 특히 화엄학에 조예가 깊으셨던 탄허 스님께서는 생전에 수많은 예언을 남기셨다. 스님의 예언은 주역과 음양오행설, 그리고 김일부 선생의 정역(正易)등에 근거한 것으로, 스님에게는 여기(餘技)와 같은 것이었지만, 길흉화복에 웃고 우는 미혹한 대중들은 스님이 선지(禪旨)와 학행(學行)보다 예언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6.25동란, 삼척 · 울진 공비침투 사건, 미국의 월남전 패배, 박정희 대통령과 마오쩌뚱의 사망, 광주 민주화 운동 등 스님의 수많은 예언들은 적중하여 세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조만간 천지개벽이 일어나 강대국의 핵폭탄이 저절로 폭발하고, 전 인류의 대부분이 일시에 사망하며, ..

청년 실업, 그 탈출구는 경주(慶州)에 있다

청년 실업, 그 탈출구는 경주(慶州)에 있다 ​ 실업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최근의 대규모 청년실업은 단순한 경제적 불황 때문만이 아닌 듯하다. 농업과 공업이 고도로 기계화되며서 더욱더 일자리가 사라진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농촌의 황폐화를 문제시하며 귀농자금까지 지원하던 정부가 이제는 이농(離農)을 방관하고 소수에 의한 대규모 영농을 권장한다. 공장의 경우 컨베어벨트와 로봇만 분주하게 움직일뿐 사람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이렇게 의식주를 생산하는 농공업 분야, 즉 1차 산업과 2차 산업에 종사하는 노 동인구의 수가 감소하는 것은 그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으로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전통적인 3차 산업에서 요구하는 인력 역시 점차 감소한다는 점이다..

친미, 용미, 반미, 숭미 그리고 친일

친미, 용미, 반미, 숭미 그리고 친일 ​ '친미', '용미', '반미', '숭미'. '미' 자 돌림의 어느 자매들 이름 같이 들릴지 몰라도 그게 아니다. 세계 각국이 미국을 대하는 네 가지 태도이다. 와스프(WASP: WhireAnglo-Saxon Protestant)들이 설치는 자랑스러운 서자(庶子) 미국에 대해 흐믓한 눈길을 보내는 노쇠한 아버지 영국의 태도는 한결같이 친미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악극〈노오(能)〉의 눈웃음치는 가면으로 속내를 가린 채 미국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우면서 점점 그 활개를 넓혀 가는 일본의 용미(用美)는 그 기교가 가히 수준급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줄을 잘못 선 죄로 오스만터키의 이슬람 제국이 해체된 이후 서구인들에 의해 유린되어 온 중동사람들은 처절..

희고 고운 손을 부 끄러워하자

희고 고운 손을 부 끄러워하자 ​ 지금은 우리가 지구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만족이라고 자부하지만, 19세기말 한반도를 방문했던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인들의 단점 가운데 하나는 '게으르다;는 것이었다. 이는 꼭두새벽부터 육체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여자나 노비, 소작인과 같은 당시의 '아랫것'들을 보고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남자들, 그 중에서도 소위 '윗분'들이 '노동하지 않음'을 미덕으로 삼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지가 멀쩡하고 총명한 장정들이 과거시험의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골방에 틀어박혀 사서삼경을 암기하였다. '입술노동'만으로도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윗분'이 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육체노동에 대한 경시'는 가난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조선시대 말기에 '노동하지 않음'과 '노동함'은 위와 ..

단일민족의 신화와 민족주의

단일민족의 신화와 민족주의 ​ 과거의 역사는 미래를 위한 교훈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왜곡된 역사를 학습할 경우 우리의 현실을 읽어내지도 못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19세기 말 '코리아(Korea)'에 대해 서구인들이 기록한 원전자 료들을 모으고 있다. 과거 일제는 '식민사관'으로 우리의 역사를 날조했는데, 혹시나 이에 대한 반발로 우리 스스로 '과도한 민족주의 역사관'을 키워온 것은 아닌지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과거 서구인들의 목격담 가운데 의외의 내용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19세기 말의 한반도가 다인종(多人種) 지역이었다는 기록들이다. 일본이나 중국을 가면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비슷하여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데, 한국인은 개개인의 모습이 너무..

문수 스님의 질타와 불교인의 과제

문수 스님의 질타와 불교인의 과제 ​ 한 스님이 몸을 불살랐다. 남 보란 듯한 시위가 아니었다. 재가 될 때까지 홀로 계셨다. 혼자 앉아 성도하신 부처님처럼, 자문자답(自問自答)의 시현이었다. 뭇 생명들의 삶터가 무너지고 있는 낙동강, 그 지류인 위천의 둑방위에서였다. 반듯하게 접어 놓은 승복과 주머니 속 수첩에 유언이 적혀있었다.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 폐기하라.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우리 사회의 최고통지권자를 향해 외친 객혈 묻은 질타였다. "원범, 각운 스님 죄송합니다. 후일을 기약합시다." 구도의 길에서 '전부'라는 도반스님의 저미듯 아플 가슴을 보듬는 일 역시 잊지 않았다. 유서 아래 이름을 남겼다. '문수(文殊)'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