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2975

어린아이의 마음은 수행자를 닮았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수행자를 닮았다 ​ 불전에서는 생 명체가 살아가는 윤회의 현장으로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를 말한다. 이 가운데 욕계나 무색계가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다 욕계는 남녀나 암수와 같은 성(Sex)이 있는 곳으로 우리와 같은 인간이나 짐승, 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性)을 갖는 천신인 육욕천(六欲天)이나 아귀, 지옥중생이 사는 곳이다. 무색계의 경우 육체와 같은 물질〔色〕이 없기에〔無〕공간적 위치를 갖지않는다 요가 수행자 개개인이 체득하는 '삼매의 경지'로 그 깊이에 따라서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공무변처란 '객관대상인 허공'이 무한히 펼쳐진 삼매이고, 식무변처는 '주관인 인식'..

윤회의 탈출구는 색계에 있다

윤회의 탈출구는 색계에 있다 ​ 부처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생명체는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세 곳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이를 삼계(三界)라고 부른다. 삼계를 육도(六道)와 비교하면 지옥 · 축생 · 아귀 · 인간 · 아수라의 오도(五道), 그리고 천상 가운데 남녀의 성(Sex)이 있는 육욕천은 욕계에 속한다. 욕계를 법어로 까마로까(Kama-loka)라고 하는데, 까마란 성욕(性慾)을 포함한 동물적인 욕망을 의미한다. 욕계 중생은 몸과 정신과 성을 갖고 있고, 색계 중생은 몸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색계에는 '정신적인 삼매경'만 있을 뿐이다. 인간과 축생은 욕계에 사는 중생으로 그 몸이 고기로 이루어져 있다. 욕계에서는 내가 남의 고기를 먹든지, 남이 내 고기를 먹는다..

불교적 인지 치료

불교적 인지 치료 화엄의 절대긍정과 반야의 절대부정 ​ 상담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정신적 문제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정서(情緖)장애이고, 다른 하나는 인지(認知)장애다. 한맺힘과 분노 등 감정적인 상처와 왜곡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정서장애에 해당하고, 잘못된 생각이나 어떤 상황에 대한 오해 등 앎의 문제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인지장애에 해당한다. 불교 유식학의 가르침과 비교하면 정서장애는 '번뇌장(煩惱障)', 인지장애는 '소지장(所知障)'에 속한다. 번뇌장은 뿌리는 아집(我執)에 있고 소지장은 법집(法執)에 서 비롯한다고 한다. 따라서 '자기자신에 대한 집착〔아집〕'이 강한 사람은 분노와 탐욕, 교만과 같은 감성적 번뇌가 심하고, '사물에 대한 고정 관념〔법집〕'이 강한 사람은 그런 잘못된 인지로..

무한을 담는 하나의 분별

무한을 담는 하나의 분별 화엄적 정책 ​ 화엄의 법계연기에서 가르치듯이 '하나' 속에 무한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내 눈 앞의 '화분'은 나에 대해서는 '정지'해있다. 그러나 지구가 쉬지 않고 자전하기에 지구 밖에서 질 좋은 망원경으로 화분을 본다면, 화분은 지구에 올라타서 큰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또 지구는 자전과 동시에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기에 더 멀리서 보면 늘어진 용수철 같은 궤적을 그리면서 '굴러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일어나서 화분 앞으로 가면 화분은 나에게 '다가오고' 화분을 지나쳐서 계속 걸어가면 화분은 나에게서 '멀어지며', 내가 주저앉으면 화분은 나의 위로 '올라가고' 내가 일어서면 화분은 나의 아래로 '내려간다.' 동일한 하나의 화분이지만 관찰자에 따..

창의력의 원천

창의력의 원천 화엄의 법계연기 ​ 화엄사상의 핵심을 210자로 요약한 의상 스님의 〈법성게(法性揭〉를 보면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一中一切多卽一)'이라는 구절이 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곧 모든 것이고 여럿이 그대로 하나다."가 되겠지만 그 참뜻을 되살려 다시 번역하면 "하나 속에 무한이 있고 무한 속에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곧 무한이고 무한이 그대로 하나다.'가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럿〔多〕' 역시 '무한(無限)'에 다름 아니다. 자구(字句)를 맞추기 위해서 '다(多)'라는 글자를 썼을 뿐이다. '일중일체다중일'이라는 앞 구절에서는 하나와 무한이 서로 내포한다는 상입(相入)을 노래하고, '일즉일체다즉일'이라는 뒤 구절..

불교 응용과 실천의 원리

불교 응용과 실천의 원리 연기緣起의 법칙 ​ 불교의 연역(演繹)의 종교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의 법칙'에서 불교의 이론과 실천 모두가 도출된다. 불교의 종교관, 가치관, 실천법 등 모든 것이 연기의 법칙에 근거한다. 물리학자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萬有〕에는 잡아끄는 힘〔引力〕이 있다는 물리법칙이다. 지금 도 대포알의 착지점이나 로켓의 궤도를 예측할 때, 뉴턴물리학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인쉬타인은 빛의 속도가 불변이라는 관측결과에 토대를 두고서, '중력'과 같은 거시적인 힘은 '가속도'라는 '시공의 함수'로 치환함으로써 뉴턴물리학에서 몰랐던 많은 현상을 예측하였다 상대성원리다. 1980년대를 전후하여 '거시적인 상대성이론'과 '미시세계의 양자역학'을 하나의 공식으로 ..

관불용침

관불용침(官不容針) ​ 서양의 속담 가운데 마귀가 사람을 꾀어 죄에 바져 들도록 하는 네 가지 말이 있습니다. ​ 그 첫째가 "누구든지 하니까"이고 두 번째가 "이까짓 일쯤이야"입니다. 세 번째는 "딱 이번 한번만"이고 네 번째는 "아직도 시간은 많은데"입니다. ​ 부처님 제자라면 마땅히 어떠한 마귀의 유혹에도 넘어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태산 같은 부동심은 '누구나'에 휩쓸리지 않고, 성성한 깨어있음은 '이까짓 일'도 간과하지 않으며, 관불용침(官不容針)의 엄중함은 '한번만'을 용납하지 않고 여구두연(如求頭燃)의 간절함은 아직도 속으로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

율과 지범개차

율과 지범개차 승가의 형법과 판례 ​ "무릇 처음으로 발심한 사람은 나쁜 친구를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친구를 가까이 해야 하며 오계와 십계 등을 받고 지범개차(持犯開遮)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의 첫 구절이다. 행간의 의미를 살려서 마지막 문장을 다시 번역하면 "무엇이 지키는〔持〕 것이고 무엇이 범하는〔犯〕 것이며, 무엇을 허용〔開,(utsarga)〕하셨고 무엇을 꾸중〔遮, (apavaka)〕하셨는지 잘 알아야 한다."가 된다. '지범'은 계목에 대한 준수와 위반을 의미하고, '개차'란 실제의 생활에서 피치 못하게 '율의 조항'을 어긴 경우에 그것의 허용여부에 대한 부처님의 판단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

지계바라밀

지계바라밀 너무나 착해서 착함을 모른다 ​ 선도 악도 없는 경지가 있다. 선과 악을 초월한 경지가 있다. 가치판단을 상실하였기에 선과 악을 구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선해서 선과 악을 모르는 경지다. 일거수일투족이 '착함' 그 자체이기에, 선행을 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육바라밀 가운데 지계(持戒)바라밀이 바로 그것이다. 선종의 육조 헤능 스님의 《법보단경》에서 말하는 무상계(無相戒)다. 무상계란 '티 나지 않는 윤리적 삶'이다. '티 나지 않는 베풂'인 보시바라밀을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도 부르듯이, 지계바라밀을 무상계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남을 대할 때 참으로 선한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지극히 고결하게 살지만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논어》의 〈위정편〉에 의하면 공자는 ..

악취공에서 살아나기

악취공에서 살아나기 속제의 실천 ​ 공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용수 보살의 《중론》에서는 공사상의 위험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공에 대해 올바로 통찰할 수 없어서 어리석은 자는 자기 자신을 해친다. 마치 독사를 잘못 잡거나 주문을 잘못 외듯이.' 독사를 잡을 경우 목을 쥐어야 한다. 몸통이나 꼬리를 잡으면 독사가 고개를 돌려서 손목을 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주문을 잘못 외면 복이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화를 당한다. 공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공에 대해 오해할 경우 선과 악을 분간하지 못하는 가치판단상실 상태에 빠질 뿐이다. 그 증상은 막행막식이다. 계와 율을 어기고 아무 행동이나 하고 아무 것이나 먹는다. 불교 유식학에서 비판하는 악취공(惡取空)이다. 그러면..